담쟁이의 집/최정례
길가 축대를 기어오르다 말고 담쟁이가 물들어가고 있었다. 석
양이 비껴가는 넝쿨 끝에서 이 계절을 기억해둬, 기억해두라구!
창의 방충망까지 타고 올라와 내 책상을 들여다보던 이파리들,
수줍게 발개지며 달라붙던 어린애 이빨 같은 것들.
인간은 자기 집을 소유할 권리가 있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
는 걸 가르쳐준 집, 빚에 몰려 급히 팔아버린, 매매계약서에 도장
꽝, 찍고는 다시는 안 보려고 멀리 돌아 지나다니던 담쟁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