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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발굴/이동호

by 광적 2021. 12. 28.

발굴/이동호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유언대로 선산에 묻어드렸다

무덤가에는 여기저기 암세포들이 만발했다

땅 속에서 차올랐던 복수腹水가 콜록콜록 기침소리를 내며 계곡으로 흘러들었다

손톱들이 언 땅을 벅벅 긁어대며 올라오고 있었다

땅 속에서 올라오는 것들은 모두 다 파랗게 질려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본 하늘은 모처럼 액정 화면을 환하게 켜놓고 있었다

구름들이 여기저기 문자메시지처럼 찍혀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남은 유품들을 정리하던 중에 휴대폰이 나왔다

휴대폰도 아버지처럼 죽어있었다

외투 주머니가 땅 속이라는 듯 편하게 누워있었다

나는 외투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안방으로 옮겼다

따뜻하게 전원을 넣었다

휴대폰 속에서 호흡 고르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한순간 아버지가 액정을

번쩍 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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