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 춤/이영식
아가미와 아랫배 감싸듯 눌러 잡고 회칼을 예각으로 뉘었다
칼끝은 통점을 피해 날렵하고 부드럽게 스민다 살집 깊이 파고들어 살점을 떼어 낸다
살림이 거덜 나는 줄도 모른 채 도마 위 마술을 견디고 있는
놀래미, 칼날 지나며 살점 떠낸 자리에 가시나무 한 그루 선명하게 박혀 있다
물고기의 모양을 지켜 주던 내부 구조물이다
사내는 가시 양쪽에 붙었던 살을 모두 떼어 낸 뒤에야 아가미에 덮였던 물수건을 걷어 낸다 놀래미의 눈동자는 아직 멀뚱하다
제 몸 위에서 한바탕 칼춤이 벌어지고 살점이 몽땅 털린 줄도 모르는 눈치다
형태만 남은 놀래미를 수족관 속에 집어넣는다 가시나무 끝에 매달린 꼬리지느러미가 좌우로 꺾인다 속내 훤한 가시나무 춤! 기포 속에 너울거린다
몇 분 간 춤사위로 휘돌고 나서야 허리가 허전했던지 몸체가 휘뚝거린다 괴목(槐木)이 되어 서서히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가시나무를 방사(放飼)할 때부터 손목시계로 시간을 재던 사내가 고무장갑을 다시 당겨 낀다
더 놀라운 춤을 선보이겠는 듯 회칼을 집요하게 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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