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프/유홍준
열다섯 살,
식어빠진 수제비를 퍼먹었다
봄날이었다
한낮이었다
빈집이었다
한 바가지 물을 목울대에 퍼 담고 펌프를 자아댔다 우리 집 펌프는 왜 이리 자꾸 물이 빠지는 거냐 어머니 푸념이 떠올랐다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어서어서 고장나버려라 이깟 펌프 이깟 생, 갓 수음을 배운 나는 거칠게 거칠게 펌프를 자아댔다
살점을 모두 뜯어 수제비 끓여놓고
집 나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봄 밤이었다
달빛이었다
헛짓이었다
펌프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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