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고등어/노수옥
노량진으로 등 푸른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우월한 DNA를 가진 고등동물
그들이 배워야 할 필수과목은
높은 파도를 넘어 바다를 완주하고
사나운 물고기를 피해
살아남는 법을 이수해야 한다는 것
가슴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렁거려도
원뿔형 머리로 책 속을 헤집고
균형을 잡으려고 부레에
공기를 빵빵하게 불어넣었다
재수, 삼수, 사수
치열한 경쟁 속을 헤엄치던
비늘 없는 몸뚱이에 가시가 돋았다
상처 입은 한 무리 고등어 떼가
물살이 거친 노량진해협을 빠져나갔다
수평선을 넘지 못한 고등어들
다시 완주를 시작하려고
출발선에 서 있지만 결승점은 까마득하다
남아있는 고등어들 소금으로 간한 컵밥이 무리였는지
허기를 이기지 못한 부레에
서서히 바람이 빠지기 시작했다
비상식량으로 저장한 DHA가 다 소진되어
한물간 눈동자가 빛을 잃어간다
등에 새겨진 파도의 무늬도 하나, 둘 사라져버렸다
그들도 한때는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펄펄 뛰던 시절이 있었다
넓고 푸른 바다를 향해 뻗어나가던
토막 난 꿈이 고시원 쪽방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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