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보호 구역/이희명
미군부대 뒷길
눈 감아도 보이는 크고 붉은 글씨
'노인보호구역'
낙엽이 그 길을 걷고 있다
몸 반쪽에는 이미 겨울이 와 버린
가랑잎 같은 한 목숨이 흘림체로 걷고 있다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흔들어 물속 길을 찾듯
뻣뻣한 팔로 허공에 노를 저으며
물풀 같은 그림자 따라 걷는다
체본 없이 완성한 그의 글씨체
벼루도 먹도 없어
맨몸으로 길바닥에 쓸 수밖에 없었던 그의 이력서
깊게 팬 이랑마다 수북이 쌓인 낙엽
걸음걸음 굽은 그림자
유서 같은 긴 편지를 쓰면서 간다
*2021 매일시니어문학상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