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그 꽃잎 사이/김우진
1.
고향에서 감자 한 상자를 보내왔다
감자 꽃에 앉았던 땡볕도 테이프에 끈적끈적 묻어있다
호미에 딸려 나온 하지의 낮달과
밭고랑을 지나던 바람도 따라왔다
끼니마다 밥상에 고향의 안부가 올라왔다
어느 날 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몇 개 남은 감자들이
허공을 향해 하얀 발을 뻗고 있었다
먼저 나가려고 발들이 서로 엉켰다
흙이 그리운 감자들을 고이 화분에 묻어주었다
2.
보랏빛, 그 꽃잎 사이로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른 어머니가 보인다
밭고랑에 엎디어 감자밭을 매다가
어린 내 발소리에 허리를 펴던,
찢어진 검정고무신 밖으로
삐죽 나와 있는 흙 묻은 발가락,
오늘 그 어머니를 만났다
뻐꾸기시계가 감자 꽃을 물고 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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