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주걱/박경남
내 별명은 밥주걱이다
단지 얼굴이 넓적하다는 이유로 붙여진 밥주걱은
딸이 내리 셋인 우리 집에서 다른 형제와 차별된 또 하나의 나였다
노래를 잘하는 언니는 꾀꼬리
얼굴이 아기주먹처럼 참한 동생은 이쁜이
하필이면 나는
밥알 덕지덕지 묻은 볼품없는 밥주걱일까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를 적마다
별명을 입에 달고 다니던 친척 아저씨를 원망하면서
골목에서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피해다녔다
평생을 꼬리표처럼 지녀야 할 그 이름을
단번에 뗄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오지 않은 건 아니었다
스물네 살, 꽃다운 나이라고들 입방아 찧을 무렵
대구의 한 예식장에서 아버지 손잡고 첫 걸음을 옮길 때
"우리 밥주걱 입장합니다!"
나지막한 피아노 선율에 맞추어 목청껏 추임새를 넣듯
친척 아저씨의 엇박자 완창!
봉숭아 씨방 터지듯 식장 안은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고
밥주걱이란 꼬리표를 떼기는 커녕
오히려 시댁에 까지 버젓이 알리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아마도
지금 내가 밥술을 먹고 있는 것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그 별명 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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