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꽃밭이라오
이팝나무도 근심 어린 국립암센터엔 이 방, 저 방 팔도 사투리가 들고 난다.
겨울 들머리 난소암 진단받은 어머니 입원하셨다. 영등포역 뒤 영일아파트 아줌마, 고흥 녹동시장 떡방앗간 주인, 제주 한림 월령포구 상군 해녀 할망, 울진 금강송면 평생 농부 필남이 엄마, 양구 파로호 언덕 위 우즈베키스탄 댁 며칠 동안 여자 6인용 병실 식구였다. 어제 오전엔 제주 상군 해녀가 며느리 손에 이끌려 퇴원했고, 정오 지나 녹동시장 떡집 주인 중환자실로 급히 실려 갔다. 그리고 홀아버지와 함께 온 독산동 눈 큰 아가씨 목석같은 표정으로 환자복 갈아입고, 신병처럼 침상에 이름표를 달고 앉았다
항암제 링거에 매달려 정발산성당 신임 수녀처럼 손 모으는 절절한 기원과 벽시계 초침 소리만 바퀴벌레가 되어 어둠의 틈바구니를 기어 다니는 심야 병동. 오늘은 웃음꽃 꺼내 든 식구들 색색 모자, 가발에 루주 칠하고 워킹한다. 울진 필남이 엄마는 친정어머니가 사준 모자라며 썼다 벗었다 하고, 월령포구 해녀 할망 제주 갈모자 빗겨 쓰고 눈물은 감춘 채 통통 튄다. 이곳 대장인 우리 어머니, 지난주 서울에서 아내가 고르고 고른 오가닉 원단 항암 모자 비구니 닮은 알머리에 눌러쓰고는 승무 버선발처럼 사뿐사뿐
어때요
미스코리아 같지요, 마음은 꽃밭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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