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검은 돛배/박정대
아름다운 기억들은 폐허의 노래 같다
오후 5시의 햇살은 잘 발효된 한 잔의 술
가로수의 잎들을 붉게 물들인다 자전거 바큇살 같은 11월
그녀는 술이 먹고 싶다고 노을이 지는 거리로 나를 몰고
나간다 내 가슴의 둔덕에서 염소떼들이 내려오고 있다
둥글게 돌아가는 저녁의 검은 레코드,
어디쯤에선가 거리의 악사들이 노란 달을 연주하고 있다
텅 빈 마음을 끌고 가는 깊고도 푸른 거리
ㅡ시집『내청춘의 격렬비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민음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