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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詩

삼현(三峴) 아라리

by 광적 2008. 3. 1.

*삼현(三峴) 아라리/김춘기

 

 

   승냥이를 키우던 노고산 곁 국사봉 위 신갈나무 너도밤나무 봄날 꿀비에 온몸을 씻으면 앞 개울은 구불구불 몸을 휘저으며 임진강으로 달렸지. 모내기 전날 마을 앞 큰 논배미엔 누렁소 풍경소리가 쟁기날에 미끄러지며, 황새들을 불렀지. 새참 지나 써레질한 논엔 소금쟁이 물맴이 식구들 죄다 나와 물수제비떴고. 아버지 어머니는 말거머리 참거머리에게 종아리로 헌혈하시던 곳.

 

   새봄 실은 바람이 햇볕과 손잡고 비암천 따라 올라오면 마을 앞 둠벙에선 개구리 맹꽁이 두꺼비들이 장가 좀 가보겠다고 목에 피가 나도록 울었지. 나는 빡빡머리들과 손잡고, 찔레 삘기를 찾아 논두렁 밭두렁 넘고. 배 헛헛한 날이면 부모님 따라간 수작골 논에서 참개구리 잡아다가 화롯불에 구워 먹었지. 일요일엔 앞 개울에서 찰방거리며 물길 돌려내고, 세숫대야로 흙탕물 모두 퍼내 올망졸망 배 뒤집는 버들치 갈겨니 가재 검정 고무신에 담아오던 내 고향.

 

   된더위에 호박엿처럼 늘어진 하굣길, 미루나무 밑에 숨어 멱감는 상옥이 정자 경분이 희순이 송이 알몸 훔쳐보고는, 가마소 북바위 시냇가에서 불볕 씻어내며 종일 개구리헤엄 물장구쳤지. 꼬마대장 승렬이 형과 조무래기들 승훈이 수기 남수 재철이 태묵이 재관이와 왁새골 산골짜기 오르내리며, 새매 때까치 둥지에 올라 알 죄다 꺼냈지. 어미 새 슬픈 울음은 내 머리 위를 빙빙 돌았고, 화난 머루 다래 넝쿨이 내 발목 당겨 칭칭 동여매었지.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기 전부터 나는 겨울방학만 기다렸지. 북풍이 소나기눈을 밀며 은골고개 넘어오면, 볼 빨간 얼굴로 토끼 발자국을 따라다녔지. 방앗간 앞 논에선 외발 썰매 씽씽 100m 경주하고, 모닥불에 나일론 양말 태우던 곳. 마을 앞 수렁논 헤쳐 미꾸라지 잡고는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는 듣는 둥 마는 둥, 구슬치기 자치기 딱지치기 제기차기 십자 가이상 굴렁쇠 굴리기로 개구쟁이 올림픽을 매일 열던 천국.

 

눈뜨고 있어도 떠오르는 파노라마 영상, 어머니 젖가슴처럼 그립다.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 세우개라고도 함. 시인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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