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편지 / 김춘기
금강의 누치 떼 물수제비뜨는 봄날
그녀와 손 붙들고 *공산성에 올랐었지
우금고개, 곰나루의 바람도 데리고서
물빛 그 바람에 얼굴 씻고 마음도 씻으며
속닥속닥 스무 살을 서로 주고 받았지
오월처럼 풋풋한, 샘물보다 더 맑은
연잎 크기 그 사랑을
넘실넘실 세월도 철없이 퍼먹은
내 가슴엔 지금까지 화석처럼 박혀 있는
마음결이 수정보다 더 투명한 그 여자
오늘은 하늘이 흐리고
바람도 슬쩍 불고 가랑비가 내린다
목련이 하얀 얼굴로 창문을 들여다본다
오래된 편지 읽고 있는 나는,
그녀를 보고 있다
*공산성: 충남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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