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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詩

일산에 내리는 눈

by 광적 2008. 5. 20.
일산에 내리는 눈/김춘기


 

일산의 눈발은 날 잡아 내린다

롯데백화점 특별 바겐세일

사람들 북적이는 날이거나

아람누리 뮤지컬공연 매진 날이거나

우리 아파트 목련이 봄을 기다리느라

가지 쭉 펴는 날 내린다

 

일산의 눈발은 따뜻하게 내린다

호수공원 메타세쿼이아 길

산책하는 사람들에게나

밤가시마을 노부부

지하셋방 아랫목에서 무릎 맞대고

군고구마 입에 넣어주는 깊은 밤이거나

율동초등학교 일학년 새봄이

백점 맞은 시험지 흔들며

할머니께 뛰어가는

오후의 길목에 따뜻하게 내린다

 

일산의 눈발은 기분에 맞춰 내린다

그리운 약속 전날 밤엔 함박눈이 내린다

내가 실연에 빠진 날은 ‘괜찮다, 괜찮다’며

눈물도 섞어 진눈깨비가 내린다

마음의 병이 깊어 갈피 잡지 못하는 날엔

진종일 소나기눈, 진눈깨비, 싸락눈이 섞여 내려

가슴을 질척거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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