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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유월의 살구나무

by 광적 2008. 3. 8.

       유월의 살구나무 / 김현식

 

피아노 소리는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밖엔 비가 내린다. 기억나는 일이 뭐,

아무 것도 없는가? 유월의 살구나무 아래에서

단발머리의 애인을 기다리며 상상해 보던

피아노소리 가늘고도 긴 현의 울림이

바람을 찌르는 햇살 같았지 건반처럼 가지런히

파르르 떨던 이파리 뭐 기억나는 일이 없는가?

양산을 거꾸로 걸어놓고 나무를 흔들면

웃음처럼 토드득 살구가 쏟아져 내렸지.

! 살구처럼 익어가던 날들이었다 생각하면

그리움이 가득 입안에 고인다. 피아노 소리는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밖엔 비가 내린다.

살구처럼, 양산의 가늘고도 긴 현을 두들기던

살구처럼, 하얀 천에 떨어져 뛰어다니던 살구처럼,

추억은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밖엔 비가 내린다.

추억의 건반 위에 잠 드는 비, 오는, .

 

 

                                            (1990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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