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 - 김영완
1
거친 숨결 허옇게 얼어붙는 역 광장 앞
어디론가 가야 하는 길손들이 서성이고
그 몇은 허방을 딛고 빙판 위로 넘어진다.
제 한 몸 세우기도 버거운 이웃들은
손잡아 일으켜 줄 온기마저 놓아버리고
저마다 제 그림자 옆을 흘깃 흘깃 지나친다.
몇 날 찌푸린 하늘, 끝내 싸락눈 흩날리고
둥지 잃고 날아든 난간 아래 저 굴뚝새들
한두 톨 옹색한 모이, 이 겨울이 너무 시리다.
2
대설주의보 내려진 오후의 늦은 귀가
매운 바람 얼얼하게 외투 깃을 후려치고
움츠린 어깨 너머로 희끗희끗 눈발 설 때
통 속의 군고구마 냄새 웅숭그린 담 모퉁이
추위도 조금씩은 익숙해진 모습들이
장작불 환한 눈빛을 봉지 속에 담아간다.
<2005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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