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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물외냉국/안도현

by 광적 2008. 5. 28.

물외냉국 / 안도현

 

외가에서는 오이를

물외라 불렀다

금방 펌프질한 물을

양동이 속에 퍼부어주면 물외는

좋아서 저희끼리 물 위에 올라앉아

새끼오리처럼 동동거렸다

그때 물외의 팔뚝에

소름이 오슬오슬 돋는 것을

나는 오래 들여다보았다

물외는 펌프 주둥이로 빠져나오는

통통한 물줄기를 잘라서

양동이에 띄워놓은 것 같았다

물줄기의 둥근 도막을

반으로 뚝 꺾어 젊은 외삼촌이

우적우적 씹어먹는 동안

도닥도닥 외할머니는 저무는

부엌에서 물외채를 쳤다

햇살이 싸리울 그림자를

마당에 펼치고 있었고

물외냉국 냄새가

평상까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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