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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있는 것들/기타

[스크랩] 글로벌시대에 나에게 맞는 대학과 전공은?

by 광적 2008. 6. 3.
 한국 부모들이 자식에 대한 높은 교육열이 경제개발의 원동력이 되었다라는 것은 누구라도 부정하기 힘들다. 영국 켐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는 자식의 교육개발에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아이들을 노동시장에 내몰아 경쟁시키는 것은, 후진국의 경제를 보호하지 않고, 선진국과 무한경쟁시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자들은 예로부터 자식을 자동차나 집과 같은 내구재(durable goods)라고 하여서, 구매후 보관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금방 망가지거나, 실증이 나는 상품과 같다고 하였다. 처음 살 때는 금쪽같이 좋으나, 점점 실증이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실증을 극복하려면, 계속 새로 단장하고, 디자인도 바꿔보고, 내장도 다시해보는 등,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자식이 보기 싫을 때가 있고, 미울 때가 있어도, 이들에게 계속 투자를 하고, 가꾸고 하지 않으면, 결국 폐기할 수 밖에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사회주의 경제학자 베블린 (Thorstein Veblen)은 유한계급(중상층)의 교육열은 단순한 과소비 (conspicuous consumption)의 일종으로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뽐내기 위한 비이성적인 소비행위에 불과 하다고 정곡을 찌른 적이 있다.

 한국 부모들이 왜 여태껏 교육에 과소비를 하고 있는가는 정확히 설명하기 힘들다. 경제적인 난국을 해쳐나가기 위해서, 자신들이 못다 이룬 꿈을 자식대에만은  이루게 하고 싶은 욕망도 있을 것이고, 귀챦고 보기 싫은 자식을 어떻게해서라도 잘 가꾸고 치장해서 예쁘게 보이게 하기위해서 이기도 할 것이며, 그냥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서 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가는 것은, 이유야 어찌했건, 왜 유치원도 가기전부터 아이들을 과외공부 시키고, 심지어는 새벽까지 과외를 시켜야 직성이 풀리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 부모의 욕심은 끝이 없는 듯 하다.

 글로벌시대에 사는 젊은 한국인으로서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부모가 얼마나 교육적으로 뒷밭침을 해 주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국제사회에서 먹히는가라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이승엽과 박지성을 들 수가 있다. 아무리 이승엽의 부모가 진력을 다 바쳐 이 선수를 뒷바라지 하여도, 미국이나 일본 야구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2군으로 밀려나고 만다. 박지성이 아무리 부모의 뒷바라지가 없더라도, 그의 실력이 프레미어 리그에서 먹히면, 그것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왜 이승엽은 인정 못 받고, 박지성은 받는가? 여기의 해답은 부모를 잘 만나서가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무슨 실력을, 어디서 연마했는가 이다.

 그러므로, 글로벌 시대에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이런 부모 밑에서 공부를 하고 자라온 자식들이 고교과정을 마치고 대학을 진학함에 있어서, 어느 대학 무슨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 가라는 것이다.

대학의 선택

 국제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의 주요 일간지에 등장하는 미국 아이비리그 진학에 관한 기사는 욕심이 많은 한국의 부모들을 충분히 자극하면서, 자신들의 자식들도 해외의 유명 대학에 진학하기를 은근히 주문하게끔 하고만다. 그런 이유에서, 너도나도 어린 나이때부터 해외 유학을 해야만 한다고 믿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정작 해외 유학을 하고, 고교과정을 마쳤어도, 어느 대학, 무슨 과에 진학해야 하는 가라는 지상명제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국 사회에 살고 있거나, 한국으로부터 유학을 나온 수험생들의 머리 속에는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의 이름들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즉, 아직도 한국부모의 사고방식은 식민지적이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한국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동경제대, 경응의숙, 조도전대학, 구주제대등이 이제는 하바드, 예일, 프린스턴, MIT로 바뀐것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만약에 일본에서도 고교생들이 모두 아이비리그에 진학하기를 위해 머리를 싸고 공부한다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일본의 동경대, 경응대, 조도전대, 구주대학등은 아직도 건재할 뿐만 아니라, 매년 한 두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한다. 자식의 조기유학을 위해 기러기가 되기를 서슴지 않는 나라는 세계에서 단 두군데다. 한국과 중국 (대만 포함)인 것이다. 두 나라 모두 식민지적 사고 방식이 현저 한 곳이다.

  글로벌 시대의 올바른 대학 선택은 바로 이러한 식민지적 사고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하는 길이다. 어떻게 하면 식민지적 사고방식에서 회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름아닌, 교육 선진국의 입장에서 교육을 보는 것이다. 영국대학이나 미국대학이 선진교육의 장소로 입지 굳은 것은 1900년대부터이다. 즉, 150년도 채 안되었다. 유럽대륙의 유명 대학들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짧은 역사인 것이다. 이 짧은 역사동안, 그러나, 영국과 미국은 대부분의 인재들을 해외 식민지로 보냈던 기간과 일치한다. 국내의 대학들과 꾸준한 연계를 맺으면서, 해외 식민지에서 지식과 부를 축적해 나갔다. 이 시기에 한국이나 중국은 식민지의 종주국으로부터 뒤떨어진 지식을 전수받는 데 그치고 있었고, 엘리트들은 종주국의 유명대학 졸업장을 따는 데 정신이 없었다. 이런 상상을 해 보자. 가령, 한국의 엘리트들이 식민지 종주국의 명문대학 졸업장에 연연하지 않고, 그들이 개척한 식민지에서 파트너로서 새로운 지식과 부를 창출했다면? 식민지의 엘리트와 종주국의 엘리트의 차이점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도 한국의 엘리트들이 미국의 명문대학 졸업장을 따는데 연연하지 않고, 국내 대학들과 연계하면서, 한국보다 못한 나라에 가서, 지식과 부를 축적한다면 우리나라의 교육은 어떻게 될까? 우리 나라의 대학들은 최근 자신들이 국제적으로 우수한 랭킹을 보유한 유명대학이 될 것이라고 자주 자랑한다. 그러나, 정작 걱정이 되는 것은, 만약, 한국의 서울대학이 정말 하바드대학이 되었다면, 우리나라의 엘리트들은 어디로 조기 유학을 갈까? 아무리 서울대학이 하바드라고 하여도, 식민지적 사고방식을 지닌 엘리트들은 그래도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날 것이다.

  글로벌 시대의 대학의 선택은 간단하다. 자신이 졸업을 하고 우리나라보다 못한 나라로 진출함에 있어, 자신을 준비시켜주고, 자신이 현지에서 취득한 지식을 받아 들여, 더욱 더 발전시켜 줄 수 있는 대학을 선택해야 한다. 이 지구의 4분의3이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이다. 그러나 지구의 부와 지식은 이 광할한 4분의3의 지역에 있다. 4분의1의 부유한 지역은 4분의3의 가난한 지역으로부터 부를 얻고, 그 지역이 생산하거나 당면해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을 유상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미국의 엘리트들이 국내외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왜 이라크에 나가서 목숨을 바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이라크에서 얻은 부와 지식이 바로 하바드대학으로 속속들이 이전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상사직원들이 왜 가난한 나라에 가서 텔레비젼을 팔았는지, 그리고 왜 동경대학이 유명하게 되었는지 다시 한 번 상기해야 된다. 물론, 한국도 상사직원들이 가난한 나라에 가서 텔레비젼을 팔고 있다. 그러나, 거기서 번 돈은 고스란히 조기유학에 쓰여지고 있고, 거기서 얻은 지식은 고스란히 자식들을 통해 미국의 명문대학으로 흘러 들어 가고 있다.

  국내대학중에 학생들을 졸업후 빈국으로 보내면서, 그 들을 준비시켜 줄 수 있는 대학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국내 엘리트대학의 교수들은 전부 선진국의 명문대학 졸업장만 땄기 때문에, 후진국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한다. 게다가, 이들 엘리트 교수들의 박사논문은 이공계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가 한국에 대해서 써서, 미국대학에 바쳤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한국대학이 변혁을 할 수는 없으리라고 본다. 그러므로, 한국의 엘리트 수험생들은 이제부터, 후진국의 대학으로 진학을 해서, 거기서 배워서, 나중에 한국대학으로 돌아와서, 지식기반을 확대해 나갈 수 밖에 없다. 지금부터 100년이란 시간을 잡고, 후진국대학으로 진학을 해서, 그 나라를 공부하고 돌아와서, 선진국 종속형의 한국 대학들을 개혁해야 할 것이다.

학과의 선택

  심리학에서 전공적성을 측정할 수 있다고 하거나, 혈액형으로 전공적성을 측정한다거나, 손금으로 적성을 본다거나 하는 짓은 모두 부질 없다. 학과의 선택은 적응에 있다. 후진국에 나가서 자신이 가장 적응 할 수 있는 것을 전공하면 될 뿐더러, 전공은 수시로 바꿔야 득이 된다고 할 것이다. 멕시코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싶으면, 멕시코에서 살다 보면서 가장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면 된다. 그것이 법학이 되었건, 멕시코의 전통 무용이 되었건, 멕시코의 음식이 되었건 상관 없다는 것이다. 유학생들의 가장 흔한 맹점은 내가 배운 지식이 한국에서 필요한가, 한국에서 팔릴까하는 생각이다. 자신의 전공이 팔리는 곳은 전 세계이다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영국이란 나라는 한반도 만한 좁은 땅을 가지고 있지만, 영국인들은 전세계에서 자신의 지식을 팔고 있다는 점을 명심 하고, 전공 선택을 해야 한다. 단, 자신이 벌어들인 돈과, 자신이 얻은 지식은 한국에 이전시켜야 하고, 그 중에 특출난 사람들은 한국대학을 점령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도처럼 영원히 종속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다음은 현재 유망한 나라별 전공의 몇가지 예이다.

    동아시아: 중국 (스포츠 지도학), 몽고 (씨름학), 극동러시아 (고전음악, 발레, 양조학)
    동남아시아: 태국 (전통요리학, 맛사지학), 베트남 (게릴라전술학, 고무나무 재배학, 정글보존개발학), 말레시아-인도네시아 (화교경제학, 이슬람학), 필리핀 (간호학, 연예경영학)
    남아시아: 인도 (종교학, 수학, 열대병학, 열대동식물학), 파키스탄-방글라데시 (목축학, 면방직학, 이슬람학), 스리랑카 (고대 항해학, 불교학)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알타이학, 자원학, 정치부패학)
    중동, 중근동: 이란 (페르시아학, 이슬람 정치학), 이라크 (바빌론학, 이슬람 테러학), 사우디-쿠웨이트-두바이 (유전석유학), 이스라엘 (테러진압학, 히브리학, 금융학, 보석경영학), 터키 (군사학, 관광경영학, 해외근로자파견학), 그루지아-알바니아-아르메니아 (와인학, 목재학)
    지중해: 사이프러스 (관광학, 인종민족갈등학, 금융학, 고대문명학), 그리스 (고대문명학, 올리브학), 말타 (고대문명학)
    동유럽: 발칸제국 (인종민족갈등학, 올리브학, 요구르트학), 중앙유럽 (고전음악, 건축학), 발틱국가 (맥주학, 소세지학), 러시아 (음악, 발레, 우주학, 자원학, 정치부패학, 건축학)
    중남미: 멕시코 (잉카학, 라틴학, 자원학, 정치학), 파나마 (운하학, 마약학), 니카라구아 (혁명학), 코스타리카 (관광학, 경제학), 아르헨티나 (목축학, 정치학, 축구학), 브라질 (정글개발학, 정치학, 법학, 축구학, 자원학, 식물학), 칠레 (농학, 마야학, 목축학, 정치학, 와인학)
    아프리카: 남아공-보츠와나 (광산학, 인종학, 아파타이드학), 이집트(고대문명학, 고고학), 가봉 (석유유전학, 광산학, 자원학), 케냐 (야생생물학), 리비야-튜니지아 (사막생태학, 석유유전학, 광산학, 관광학, 부동산학, 테러학), 레유니옹-모리타니아-세이쉘즈 (관광학, 금융학, 설탕학), 모로코 (대마초학, 관광학).

  글보벌 시대에 대학의 선정과 학과의 선정은 오히려 그 선택이 폭이 넒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민의 교육에 대한 의식구조가 식민지 스타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전제가 앞선다. 한국이 주인의식으로 자녀들을 교육한다면, 앞으로의 한국의 미래는 밝을 것으로 예상 된다.

출처 : Sigh of the Oppressed
글쓴이 : Palganto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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