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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뿔논병아리 / 이영옥

by 광적 2008. 9. 8.

뿔논병아리 / 이영옥


뿔논병아리 어미가

갓 부화한 새끼를 등에 업고 강을 헤엄쳐 가고있다

어미의 마음이 등 쪽으로 온통 쏠려있다

누구를 업는다는 것은 기꺼이 져 주는 일

이기기 위해 지는 게 아니라 몸을 낮춰 깨끗이 지는 일

져 준다는 것은

바닥에 팽개치지 않고 자신보다 높게 올려

떠받들어 전부를 사랑해 주는 일

그 무게에 등이 휜 다해도 눈부시게 감당하는 일

완전무결하게 진 자세로

세상의 물살을 갈퀴로 먼저 살살 헤집어 주는 일

아이 둘을 업어 키웠던 나는

다 커 버린 지금도 가끔 업어 주고 싶을 때가 있다

바닥이 되었다가 우뚝 일어서주는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업는 다는 것은 뒤통수의 느낌만으로

뒤뚱거리며 오는 걸음마의 방향을 알아맞히는 일이며

두 팔을 뒤로 내민 순간 자신은 까맣게 잊는 일이다

뿔논병아리가 지나간 물길이 부드럽게 닫힌다

어린것들을 업어 주려고 강은 저렇게 굽이굽이 휘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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