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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詩

달과 어머니/김춘기

by 광적 2008. 9. 19.

달과 어머니/김춘기

 

 

 

아파트 피뢰침 위에 앉아 있는

핼쑥한 상현달

날마다 불러오는 배를 안고

하늘 계단 오른다

아들 전화 한 통화에도

웃음이 보름달 같던 어머니

난소암 재발 후

침대가 그녀의 식탁이고 화장실이다

통증이 지네 발처럼

온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배

형광등 하나 켜 놓은 병실에서

나는 무릎 꿇고

복수 차오르는 달을 밤새도록 쓰다듬는다

 

심야 강변북로, 경적 앞세운

구급차가

시간을 압축하며 어둠을 가른다

팔목에 야윈 가슴에

면발처럼 수액을 달고 있는 어머니

팥죽빛 오줌이

투명주머니의 눈금을 읽는다

나무젓가락처럼 마른 손가락

장작처럼 굳어지는 허벅지

반쯤 막힌 목구멍으로 삼키는 하얀 신음

창틈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복수처럼 흥건하다

반달이 만월에 가까워질수록

온기 없는 침대 위에

고요만 한 장씩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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