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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時調

[스크랩] 매디슨카운티의 다리/ 이근배

by 광적 2009. 3. 24.

 

매디슨카운티의 다리/ 이근배


한세상 살다가/ 모두 버리고 가는 날

내게도 쓰던 것/ 주고 갈 사람 있을까

붓이나 벼루 같은 것/ 묵은 시집 몇 권이라도


다리를 찍으러 가서/ 남의 아내를 찍어온

나이든 떠돌이 사내/ 로버트 킨 케이트

사랑은 떠돌이가 아니던가/ 가슴에 붙박혀 사는


인사동 나갔다가/ 벼루 한 틀 지고 온다

글 쓰는 일보다/ 헛것에 마음 뺏겨

붙박힌 사랑 하나쯤/ 건질 줄도 모르면서

 

- 시집 '종소리는 끝없이 새벽을 깨운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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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보면 이 영화를 인용한 시가 더러 있을테지만 가락이 배인 현대시조 한 편으로 가물거리는 기억 속의 영화와 소설을 재생해 본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로버트 킨 케이트(52세)는 지붕이 덥힌 다리 로즈만을 촬영키 위해 메디슨 카운티라는 마을에 당도하여 길을 물으려 어느 집 앞에 자신의 낡은 트럭을 세운다. 과객 킨 케이트는 바로 그 곳에서 맨발에 청바지와 물 빠진 청색 작업복 셔츠를 입고 현관 앞 그네에 앉아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는 중년 여인 프란체스카(45세)를 만난다. 마침 프란체스카의 남편과 아이들은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도시로 떠나 3일 후에야 돌아올 예정이다. 바로 그 3일동안 그들은 일생에 한번밖에 오지 않을 사랑을 엮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짧은 기간 애틋하고 격렬한 사랑을 나누지만 필연적 이별을 맞는다.

 

 킨 케이트는 왜 볼품없는 시골 여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으며 프란체스카 또한 떠돌이 사진작가에게 그토록 쉽게 마음을 빼앗겼을까? 교사직에 보람을 느꼈지만 남편의 반대로 일을 포기해야 했던 여인. 그리고 이탈리아 가곡을 틀어놓으면 팝송으로 바꾸는 딸,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을 여닫는 남편과 아들, 식탁에서의 침묵, 숨이 막힐 듯 적요한 집안 분위기... 그것은 예이츠의 시를 암송할 정도의 감성을 지닌 프란체스카에게 더욱 견디기 힘든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 앞에 늘 그리워하던 고향 이탈리아의 바리를 가본 남자가 나타난 것이 사단(?)이라면 사단이었다. 킨 케이트는 프란체스카에게 이렇게 작업을 건다. '내가 사진을 찍어 온 것, 그 많은 곳을 다녔던 것은 바로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였고, 사랑하기 위해서였으며, 이렇게 확신에 찬 감정을 느껴 본 것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요‘

 

 자신의 꿈을 버리고 살아가는 한 여인의 내면을 일깨워 그녀가 끝내 선택하지 못한 길을 지켜주고 기다리는 남자로 프란체스카에게 비쳐졌다는 것. 사랑의 조건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리라. 그 후 평생 동안 가슴속에 묻어만 두었던 두 사람의 사랑은 프란체스카가 세상을 뜨고서 그녀의 유품을 정리하던 자녀들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킨 케이트가 생을 마감하자 그의 가장 소중했던 카메라 니콘F가 상자에 담겨 프란체스카 앞에 도착하는데 그 안에는 빛바랜 쪽지 하나가 함께 들어 있었다. '흰 나방이 날개 짓 할 때(when white moths were on the wing) 다시 저녁 식사를 하고 싶으시면 오늘 밤 한번 더 찾아주세요, 언제라도 좋아요' 잠 못 이루던 프란체스카가 한밤중 트럭을 몰고 달려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즈만)에 꽂아두었던, 로버트에게 보낸 쪽지(예이츠의 시를 인용한 초대의 메모)였던 것이다.

 

 그리고 소설에는 이런 대목도 있었다. '친애하는 프란체스카, 사진 두 장을 동봉하오. 하나는 해 뜰 무렵 초원에서 찍은 당신 사진이오. 당신도 나처럼 그 사진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소. 또 렌즈 통을 내려다보면 그 끝에 당신이 있소. 매디슨 카운티에서 찍은 사진이 잘 나왔소. 당신을 사랑하는 로버트'

 카메라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은 사진을 '기억을 지닌 거울'이라 하였다. 사진은 어둠 속에 묻히는 순간들을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시간의 기술'로 사진 속에는 그 때의 모든 색깔과 냄새와 소리까지도 함께 저장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흘 동안 사랑하고 평생 동안 그리워하는 중년의 사랑. 그 배경에는 굳이 그 기억을 DPE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강한 사랑의 추억이 영원토록 자리할 수 있었기에 누구나 한번쯤 그런 사랑을 꿈꾸어 본다.

 

 영화에선 로버트 킨 케이트와 프란체스카가 처음 만난 날 저녁 그들이 함께 집 주위를 산책하며 예이츠의 시구로 정담을 나누는 장면이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산책할 때 로버트가 예이츠의 시구절인 "달은 은빛 사과, 해는 금빛 사과(The silver apples of the moon, The golden apples of the sun)"라고 낭송하자 프란체스카는 이 시가 예이츠의 시 'The Song Of Wandering Aengus(헤메는 잉거스의 노래)' 임을 단번에 알고 다음날 새벽 역시 같은 시의 한 구절인 바로 그 “나방이 날개 짓을 할 때...”라는 쪽지를 그들 만남의 가교인 로즈만 다리에 붙여 놓는데 그 쪽지가 바람에 팔락이는 장면이 생생하다. 이 쪽지를 로버트는 죽을 때 까지 간직하였다가 죽은 후 "4일 동안"이라는 그의 사진집에 끼워서 프란체스카에게 다시 돌아왔던 것이다.

 

  이근배 시인은 ‘한세상 살다가/ 모두 버리고 가는 날, 내게도 쓰던 것/ 주고 갈 사람 있을까’라며 그의 일생에서 가장 각별한 애착이며 유별난 취미인 수집된 소장 벼루를 쓰다듬는다. 생각해 본다. 내게도그런 가슴 깊은 곳의 붙박이 사랑이 있었는지를. 얼른 떠오르는 게 있긴 한데 그만큼 애뜻하게 모셔진 것은 아닌 듯 싶다. 또 그런 사람이 있다 한들 그에게 남길 분신처럼 아껴온 그만한 물건이 있을까. 그 대목도 특별히 내세울 게 없다. 이래저래 쓸쓸하다.

 

 로즈만 다리는 몇 년 전 불타 없어져 버렸고,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는 젊은이들에게 미제 신파쯤으로 이해될런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노털들의 로망인 다소 위험하긴 해도 아름다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예이츠의 시는 오늘도 펄럭이며 불리어진다. 그리고 킨 케이트역의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보고 싶다. 비맞고 선 장면 등을 보면 당시 60 중반의 나이로 그 역을 맡기엔 너무 늙었다는 견해도 있으나 그래도 봐줄만 했고 멋있기만 했다. 이제 우리 나이로 80인 그가 연출하고 주연한 영화 '그랜 토리노'가 내일 개봉이라는데 따끈할 때 그거나 서둘러 봐야겠다.

 

 

 ACT4


 
The Song Of Wandering Aengus - Donovan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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