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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詩

종점/김춘기

by 광적 2009. 7. 13.

종점/김춘기

 

 

 

서산마루에 걸터앉은 하늘이

대포 한 잔에 취기가 돌쯤

늦가을 어스름 몇 점 싣고 온

법원리 종점 33번 시외버스

천천히 시동을 끈다

 

보건지소 다녀오는 마지막 승객

중노인이 내리고

어둠이 전신주의 허리를 감으면

나른한 하루도 터벅터벅

귀가를 서두른다

 

젊은 시절 면 소재지 처녀와

수수 밭머리에서 청춘을 피웠던 박씨

장성광업소 광부 20년 이력, 지금은

교하신도시 지하 맨홀을 드나든다

 

아내도 가고, 한 줌 꿈마저

도시 외곽을 떠도는 밤

중고 티브이 혼자 춤을 춘다

그믐 달빛 몇 줄기에 젖은

양철 지붕 사글셋방

버스를 따라온 초겨울 바람이

비닐 덧댄 창문을 밤새도록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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