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김춘기
서산마루에 걸터앉은 하늘이
대포 한 잔에 취기가 돌쯤
늦가을 어스름 몇 점 싣고 온
법원리 종점 33번 시외버스
천천히 시동을 끈다
보건지소 다녀오는 마지막 승객
중노인이 내리고
어둠이 전신주의 허리를 감으면
나른한 하루도 터벅터벅
귀가를 서두른다
젊은 시절 면 소재지 처녀와
수수 밭머리에서 청춘을 피웠던 박씨
장성광업소 광부 20년 이력, 지금은
교하신도시 지하 맨홀을 드나든다
아내도 가고, 한 줌 꿈마저
도시 외곽을 떠도는 밤
중고 티브이 혼자 춤을 춘다
그믐 달빛 몇 줄기에 젖은
양철 지붕 사글셋방
버스를 따라온 초겨울 바람이
비닐 덧댄 창문을 밤새도록 흔들고 있다
'나의 글밭 >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과 아내 (0) | 2009.09.10 |
---|---|
매미울음을 볶다<교원문학상 수상작> (0) | 2009.09.02 |
영천사, 한낮<강원문학 신인상 당선작> (0) | 2009.06.26 |
여름 전쟁 (0) | 2009.06.26 |
고집, 인해전술 (0) | 2009.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