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아내 / 김춘기
귀뚜라미소리 가득한 강섶에서
식구들 건강하게 해달라고
손을 모으면
푸른 달빛을 양손 가득 쥐어주던 한가위 보름달
산등성이에 앉아 묵상중이다
아폴로 11호가 반딧불이처럼 붙어
성조기를 펼치던 달
우리 딸 윤지
장미꽃 피는 날짜를 정확히 알려주는 달
벽에 금이 간 다세대주택의 담벽을 타더니,
오늘은 초저녁부터 침실로 들어와
담도암 재발한 아내의 보름달 같은 배를
쓰다듬는다, 심야 앰뷸런스가
시간을 압축하며
대학병원 응급실로 내달린다
숨찬 바람이 달빛을 데리고
급하게 그 뒤를 따라간다
어둠에 잠긴 밀물이 강의 무릎까지 차오른다
아내의 배가 더욱 팽팽하다
달도 끝까지 부풀어오른다
복수 가득한 달의 신음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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