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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詩

도봉산, 주식시장 열다/김춘기

by 광적 2009. 9. 14.

도봉산, 주식시장 열다/김춘기

 

 

 

   왁자지껄 배낭들이 바람의 그림자를 쫓아 봉우리 쪽으로 지름길을 낸다.

 

   마루턱부터 개점 중인 도봉산증권, 전철역 계단에 무가지처럼 쌓이는 목소리에 객장이 후끈하다. 시세를 클릭하며 그래프를 끌어 올리는 포대능선, 실시간 강세에 맞춰 테마주의 주춤하던 일봉이 하늘을 찌른다. 우직하게 상한가를 고수하는 만장봉, 텔레비전 애널리스트도 연일 활황의 마개를 딴다.

 

   산초 열매 몇 알로 배를 채운 송추계곡 유리딱새. 부리로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쥐똥나무도 몇 알 차익을 남긴다. 알밤 도토리 날래게 주워 모으는 날다람쥐 깜장 눈알이 코스피 곡선 위에서 구른다.

 

    투우사 망토 빛깔로 가을을 직조하는 산

   망월사 곁 입 닫은 적송, 힘껏 된새바람의 가슴팍을 민다. 머지않아 서리가 내리고 골짜기마다 낙엽이 우북이 쌓일 거라는 해외파 경제학자의 말이 귓불을 스친다. 풍문이 잠시 들렀다가 나간다. 누군가 은밀히 주가를 조작 중이라고. 그리하여 빈 깡통들이 오일장 길냥이처럼 몰려다닐지도 모른다고.

 

   풍문은 풍문일 뿐이라며, 여의도 금융가 대세가 계속 상승 중이라며 지름길 계곡 쪽으로 사람들을 민다. 전광판도 밝기를 날마다 높인다. 다락능선 장골의 굴참나무, 회룡폭포 위 너럭바위가 서로 불길을 잡아당긴다. 강남 큰손들만 거금 챙겨 떠난다고 화염의 꼬리를 붙든 강북 개미 떼, 마음이 급하다. 삼양시장 노점의 몸빼들도 색바랜 통장을 들고 산에 오르겠다며, 어둑새벽의 끈을 조인다.

 

   ((심야, 경제뉴스 한 토막이 먹이를 쫓는 실뱀처럼 화면 아래 줄을 그으며 지나간다. 공적자본이 긴급 회동 중이라고, 이젠 중부에서 발을 빼 반도의 남부를 선점해야 한다고))

 

   마음 들뜬 당단풍나무 사이로 종종걸음 남실바람이 가쁘게 산비알을 오른다. 하늘의 뒤꿈치를 붙들고 있는 만장봉, 울긋불긋 산자락을 받치고 있는 초겨울 골짜기가 갈수록 벼랑처럼 아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