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덕양중학교 / 김춘기
하늘이 물청소를 마끔히 마친 상오
학교 뒷들 풀벌레 가족
명지바람을 밀어내며, 촉촉한 풀잎 건반을 눌러댄다
참새 눈알 같은 구슬을 꿰는 맥문동 이파리에
이슬 방울 촘촘하다
물 한 바가지에 배를 통통히 불린 조롱박
새끼 물뱀처럼 기어가는 고구마줄기 무릎에 윤기가 흐른다
작두콩이 일제히 탄창에 총알을 장전하며
외줄을 타고 옥상을 공격 중
지난 달 제대한 총각선생님, 호스로 쏘아대는 물폭탄에
놀란 수세미 덩굴
볕의 꼬리를 얼른 펼쳐 노란 입술을 한 장씩 내민다
가사실 빵 굽는 시간, 고소한 냄새에
푸른 하늘이 바짝 마르고
햇살에 구워진 늙은 호박이 엉거주춤 앉아있다
남학생들 풋살경기 응원하는 감나무
몇 날을 두고 산란 중인 은행나무
껌 째작째작 씹는 여학생들 함성소리를
이파리로 죄다 받아 담장 밖으로 튕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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