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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詩

가을, 덕양중학교

by 광적 2009. 9. 13.

 가을, 덕양중학교 / 김춘기

 

 

 

하늘이 물청소를 마끔히 마친 상오 

학교 뒷들 풀벌레 가족

명지바람을 밀어내며, 촉촉한 풀잎 건반을 눌러댄다

참새 눈알 같은 구슬을 꿰는 맥문동 이파리에

이슬 방울 촘촘하다

물 한 바가지에 배를 통통히 불린 조롱박

새끼 물뱀처럼 기어가는 고구마줄기 무릎에 윤기가 흐른다


작두콩이 일제히 탄창에 총알을 장전하며

외줄을 타고 옥상을 공격 중

지난 달 제대한 총각선생님, 호스로 쏘아대는 물폭탄에

놀란 수세미 덩굴

볕의 꼬리를 얼른 펼쳐 노란 입술을 한 장씩 내민다


가사실 빵 굽는 시간, 고소한 냄새에

푸른 하늘이 바짝 마르고

햇살에 구워진 늙은 호박이 엉거주춤 앉아있다

남학생들 풋살경기 응원하는 감나무

몇 날을 두고 산란 중인 은행나무

껌 째작째작 씹는 여학생들 함성소리를

이파리로 죄다 받아 담장 밖으로 튕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