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사랑/최을원
수양버들 밑동이 잘렸다 치렁치렁 고개 숙인 번뇌도, 머리 위에 띄워 놓고 그렁그렁 반짝이던 것들도 다 함께 잘렸다
스스로는 끊어낼 수 없던 것들
꼭꼭 숨겨왔던 내력들이 낱낱이 드러났다 달아날 수도, 다가설 수도 없는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태양의 황도를 따라 돌던 장문의 두루마리 사연들, 은밀히 견디던 것들의 물기가 글자마다 번졌다
기약할 수 있는 게 죽음밖에 없다면, 기다림만으로 완결되는 한평생도 있는 거였다 햇살이 수의 한 벌 입혀주는 것으로 끝나는 초상도 있는 거였다
이승엔 또 봄이 오고 새들이 모여 들면, 감출 무엇이 남은 것일까 나무는 그늘을 끌어다 죽은 발등을 자꾸만 덮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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