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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時調

(사설시조)처당숙 이력서

by 광적 2012. 3. 7.

 

처당숙 이력서 / 김춘기

 

 

    한 인생이 뚜벅뚜벅 강을 건너고 있다

 

    밀양군 초등면에서 산 밖에 모르던 사람. 꿈 가득 안고 완행열차에 오른 중졸이 전부인 한 청년. 가리봉동 나염공장 약품 냄새, 퇴근 길 막걸리로 씻어버리고, 철산리 뚝방집에서 부나비처럼 퍼덕이며 사랑도 했다. 큰 아이 전문대 졸업 후 취직했다고, 성공의 열쇠 하나는 가지게 되었다고, 한 잔. 아내 눈동자가 샛별 같다고 또 한 잔. 그러나 난데없는 공장부도로 백수가 되고, 서울에 찌든 몸뚱이마저 파지가 되어 바람에 밀려 다니는 몸. 소아마비 아내의 야매 미용으로 입에 풀칠은 했다지만. 폭포의 물살처럼 부서지는 실패, 좌절의 도미노. 끝내 재기의 발버둥조차 치지 못했던 그 사람. 그래도 한잔 술에 남은 꿈을 안주로 들었던 사람. 뜨거운 사랑 한번은 해본 사나이. 청춘은 급행 열차처럼 떠나버리고, 하늘 푸른 날 웅크린 고향의 강 하구 둑에서 서걱이는 갈대밭을 서성이는 바람의 아들이 되어 유채꽃보다 작은 꿈 한 송이 가슴에 꽂아보지도 못하고 뚜벅뚜벅 겨울 강을 건너고 있다

 

    남도의 피붙이 땅으로 회귀하는  우리 처당숙

 

 

 

(2001.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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