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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時調

금모래 은모래/이태순

by 광적 2013. 3. 6.

 

  
이태순 시인

금모래 은모래/이태순
  

   저 냇가 
   그래 맞아

 

   찰방찰방 걸어가면 복사뼈 발개지고

 

   조약돌 재잘거리던 고 작은 입 투명했지

 

   간지러워
   간지러워
   땅의 실밥 톡톡 터져

 

   초록 뱀
   눈을 뜨는 
   냉이 향 훅 번지는

 

   봉긋한 분홍언저리 숨소리가 가빴지


                     ―이태순, 〈금모래 은모래〉 전문(《나래시조》 94호)

 

   반복으로 말맛을 돋운 예다. 제목부터 입에 착착 붙는 운율을 지닌 말이다. 게다가 첩어로 쓸 때 더 살아나는 말이라 반복에도 색다른 재미를 덧붙일 수 있는 표현이다. “금모래 음모래”의 ‘금/은’은 ‘금나라 은나라’ ‘금수저 은수저’ ‘금도끼 은도끼’처럼 낯익은 이야기나 전통 노래 속에도 많이 나오는 것들이다. 그런 만큼 자칫 상투성에 빠질 우려를 지닌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말맛을 높이고자 하면 얼마든지 다른 효과를 보탤 수도 있다. 이태순 시인이 추억을 입혀 내놓은 이 말들은 그런 말맛과 노래의 즐거움을 같이 보여준다. “찰방찰방”이나 “간지러워/ 간지러워” 등의 표현도 청각이며 촉각을 앞세우는 반복을 통해 살갗에 닿는 느낌들을 실감나게 살린 예다. 거기에 다시 얹는 것이 어린 시절의 동요 같은 율동이라 하겠다. 또 “복사뼈 발개”진다는 표현이나 “땅의 실밥 톡톡 터”진다는 표현은 매우 구체적인 감각을 담고 있어 감염력도 상당하다. 냇물에서 이렇게 놀아본 경험이 있는 독자에게는 특히 그렇다. 이완을 유발하는 종장 마지막 구의 회고조 종결어미가 좀 의아스럽지만, 냇물의 느낌까지 잠시 맛보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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