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큐슈여행
2004.12.26(일)
크리스마스 캐롤도 잔잔하게 깔리는 거리엔 무언가 근심에 잠긴 사람들의 시선이 낮게 깔려있다. 겨울방학과 함께 나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짐을 챙겨 일산역으로 향한다. 겨울햇살이 나뭇가지의 틈을 타고 들어온다.
육교를 넘어 역에 도착하여 표를 사고 조개탄 난로에서 훈기를 더듬는다. 서울로 가는 경의선 11:32분 발 통일호 열차가 철거덕거리며 달린다. 사람들의 기차에 몸을 맡긴 채 조용히 차창으로 시선을 내놓고 있다. 수색을 지나 늘씬하게 새로운 자태를 드러낸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벌써 일행들이 나와서 반겨주고 있었다.
교감선생님, 김미자부장님, 그리고 이혜자, 김미란, 김미형 선생님… 식당에 가서 전주비빔밥으로 끼니를 챙기고 다시 대합실에 와서 대기한다. 우리를 안내하는 (주)여행박사에서 가이드가 나와서 인사를 한다. 눈이 동그란 아가씨 노영미씨였다.
12:30 발 부산행 KTX에 올라탔다. 말로만 듣던 고속열차에 처음 오른 것이었다. 열차의 중앙을 기준으로 마주보며 앉아서 가는 기차, 뒤를 보고 가는 사람들은 조금 불편할 것 같았다. 광명역을 거쳐 도시를 빠져나간 기차는 뒤도 안 돌아보고 열심히 달린다. 시속 300km의 빠른 속도로 겨울을 뚫고 기차는 달린다. 나는 차창으로 열심히 지나가는 겨울의 풍광을 눈에 넣고 있었다. 지평선 근처의 높은 산들은 한 해 농사를 끝낸 황소처럼 누워서 쉬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붙였다가 다시 뜨니, 낙동강이 흐르고 있었다. 철새들의 낙원이라는 을숙도를 지나 기차는 부산역에 도착하였다. 몇 년만에 와 보는 이 곳은 낯설게 느껴졌다. 대전에서 합류한 김현정선생도 보였다. 택시를 잡아타고 부산항으로 향하였다.
부산을 알리는 일본 글씨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영어로 Welcome To Busan이 보인다. 드디어 18:00 부관페리호 시모노세키행 하마유호에 승선한다. 선창으로 금강산 관광 설봉호가 들어온다. 영도다리의 황금불빛이 눈을 자극한다. 용두산공원의 네온사인이 시선으로 들어온다.
36년 간 우리나라를 자극했던 일본, 지진으로 홍역을 치르는 일본, 지진 때문에 나무로 지은 집이 많다는 일본, 태풍으로 매년 두 세 번 씩 감기를 앓는 일본, 지진방재관이 150군데나 있다는 일본, 그러나 경제적으로 풍부한 일본, 그래서 무언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 일본으로 밤배는 파도를 가르며 남동방향으로 보름달을 끌고 가고 있다. 갑판에서 보는 밤바다는 바람과 달과 몇 개의 별들만 속삭일 뿐이었다. 선실에선 짐과 함께 챙겨온 소주가 나와 목젖을 자극한다. 한잔, 두잔, 세잔, 계속 술잔이 돌아간다. 한 사람, 두 사람 잠자리에 들어간다. 잠자리에서 깨어보니, 배는 벌써 시모노세키 외항에 새벽 2시쯤 도착하여 아침을 기다리며 정박하고 있었다.
2004.12.27(월)
선상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 시모노세키(下關)항에 발을 밟는다. 미리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탄다. 대나무숲이 우거진 산을 따라 난 고속도로를 버스는 달린다. 혼슈에서 큐슈로 가는 관문대교를 건넌다. 바다 위로 건설된 다리로서 우리나라의 서해대교 규모쯤 될 것이다. 눈에 들어오는 들판에 겨울 논에서 벼가 누렇게 익고 있었다. 백제에서 온 왕인박사의 학문의 신을 섬긴다는 다자이후텐만구(大宰府符天俯滿付宮)에 도착하였다. 작은 역사의 마을 다자이후에 있는 텐만구는 일본 텐만구 신사의 총본산으로 학문의 신을 모시는 신사로 유명한 곳이다. 국가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일년 내내 많은 참배객들이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이 신사에는 입시 철에 특히 사람들이 많이 붐벼댄다고 한다.
버스는 또다시 달린다. 편도 3개 차선인 고속도로에 12대의 감시카메라가 자동차의 속력을 붙잡고 있다. 한국인이 처음 일본에 도착하였다는 고쿠라, 일본 속의 세계의 관문이라는 큐슈, 제주도보다 남방에 있는 아열대기후 쯤 될 것이다. 차창으로 지나가는 일본의 아파트, 빌라엔 하나같이 베란다가 트여있었다. 우리나라엔 모든 베란다가 창문으로 막혀있었는데…
버스는 구마모토공항을 향하여 열심히 달리고 있다. 일본문화 탐방에 나섰던 신일중학교 학생들을 인솔하시던 교장선생님과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길 양옆 벼랑엔 줄장미들이 넘어오는 것 같았다. 길 옆 전신주와 전기줄엔 까마귀들이 진을 치고 앉아서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교장선생님을 태우고 버스는 달린다. 아소산을 향하여…
가이드는 어제 선상에서 본 인도네시아 지진에 대한 얘기를 한다. 지구과학선생인 내가 이 부분은 제대로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이크를 들었다. 지구는 약 10여개의 크고 작은 100km 정도의 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들 판의 경계를 통하여 지구내부의 에너지가 분출된다고. 일본과 인도네시아 등은 태평양판, 유라시아판, 필립핀판 등의 경계로서 에너지가 분출되어나온다고. 그래서 항상 지진과 화산활동에 노출되어 있는 나라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버스는 고개를 빙글빙글 돌아서 아소산을 향하여 힘차게 바퀴를 굴리고 있었다. 구름 낀 하늘과 함께 어언 버스가 주차장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일행과 함께 산으로 오른다. 드디어 내 눈으로 활화산을 보게 되는 순간이다. 가슴도 뛰고, 마음도 들썩인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시린 손을 비비면서 아소산으로 향한다. 벌써 코끝에서는 계란 삶은 냄새가 난다. 바람과 함께 세계 최대의 칼델라를 가졌다는 아소산에 이르렀을 땐 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활화산이라고 하여 용암이 분출되는 것은 아니었다. 유독가스가 나오고, 용암이 분출된다면 여기까지 관광객이 올라올 수 있겠는가.
일행은 고산의 바람과 함께 버스주차장까지 걸어서 내려온다. 산엔 난장이 나무들만 여기저기 모여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돌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잘난 척 얇은 겉옷을 입은 나는 추위를 느끼고 있었다. 버스는 구마모토항 쪽에 있는 대자연 테마파크인 아소팜랜드에 도착하였다.
마치 방갈로처럼, 아니 이글루처럼 침실이 지어져 있었다. 나는 교감선생님과 룸메이트가 F-88번 방을 배정 받았다. 아소온천에서 간단히 온천욕을 하였다. 온천탕, 노천탕, 각종 병에 좋다는 탕을 오가며 일본온천을 경험하였다. 예상외로 큐슈의 초저녁은 춥게 느껴졌다.
저녁식당엔 벌써 사람들이 와 있었다. 여러 나라의 국기가 걸려있고, 그 아래 다양한 음식을 뷔페로 하는 식당. 나는 우선 눈으로 어떤 음식이 있는 지 확인하고 그릇을 집었다. 저녁식사와 함께 우리 일행의 식탁엔 생맥주가 유리잔에 가득가득 부어지고,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여행길에서 부담 없이 마시는 술이었다. 건배를 확인하기 위하여 빈 술잔을 머리 위에 쏟아 보였다. 널다란 식당엔 우리 일행만이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식당을 나온 우리 일행을 그냥 숙소로 들어갈 수 없었다. 식당 옆의 가라오케집에 다시 진을 쳤다. 일본이지만 그 곳에 한국의 노래들도 다 와 있었다. 우리는 여기가 한국으로 착각하고 열심히 노래방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다시 술잔이 오고가고… 취기는 머리끝까지 올라와 있었다.
나는 자정쯤 방에 들어와 잠을 청하였다. 잠깐 후 눈을 뜨니, 교감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 때부터 방갈로 안은 천둥이 치기 시작하였다. 나는 어쩔 줄 몰라 양쪽 귀를 막았다. 그러나 계속 할 수는 없었다.
2004.12.28(화)
아침에 일어나니, 예상 밖으로 하얗게 서리가 내려 있었다. 남국의 겨울도 겨울은 겨울인가보다. 버스는 시마바라로 가기 위하여 구마모토항으로 향한다. 항구의 입구엔 한글로 “열렬히 환영, 한국여행단” “구마모토 페리주식회사”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항구에 도착한 버스는 통째로 사람과 함께 오션애로우 페리호의 배에 오른다. 나는 재빠르게 배의 갑판으로 오른다. 새하얀 일본 갈매기들이 갑판으로 날아와 기웃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먹기 위하여 배의 갑판 근처에서 날갯짓을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한 새들이라 그런지,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바다에는 굴양식장, 김양식장, 가두리양식장 같은 것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었다. 바다에 끝없이 떠 있는 부표들을 뒤로 하며 시마바라로 배가 이동하고 있었다.
도로에 오가는 차량들이 모두 반짝반짝 빛나는 나라, 경적을 거의 울리지 않는 나라. 항상 남의 입장에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평소 생활 속에 배어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차는 미즈나시 혼진 지진패해 마을에 도착하였다. 대단한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1991년 구겐다케화산이 분출하여 이 마을에 화산쇄설물이 덮쳐 집들에 땅 속에 잠겨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망원경으로 보이는 화산 정상의 하얀 수증기만이 그 곳이 활화산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버스는 우리 일행을 싣고 다시 구불구불 산길을 달린다. 설악산을 가기위해 넘는 한계령처럼 빙글빙글 버스가 돌고 돈다. 차창에 측백나무 같은 상록수가 빽빽하게 온 산을 채우고 있었다.
드디어 운젠국립공원의 지옥온천이라고 하는 노천온천지역에 도착하였다. 수증기가 하얗게 나오고, 뜨거운 온천수가 나오고 있었다. 마치 옐로스톤을 축소해 놓은 모습처럼… 운젠지옥온천은 산중턱에 산책길 형태로 자연 그대로 배치되어 있었다. 천연온천수가 끓어오르는 다양한 모습을 지옥에 비유한 운젠지옥은 바위지옥, 아비규환지옥, 여인지옥, 참새지옥, 팔번지옥, 달표면지옥 등과 같은 명칭들이 붙어 있었다. 각 지옥들 사이의 산책길과 골짜기에서는 또 다른 묘미가 있었다. 뜨거운 온천수에 직접 손을 넣어서 지구의 열기를 확인하였다. 가이드가 전하는 온천수로 익힌 달걀의 맛이 목젖을 새롭게 자극하였다.
다시 버스는 하우스텐보스에 도착하였다. 1992년 문을 열였다는 하우스텐보스엔 넓은 부지에 40만 그루의 나무와 30만 종의 화초가 자라는 17세기의 네덜란드의 왕궁과 거리를 재현하여 만든 일본 속의 네덜란드라고 불린다. 하우스텐보스란 네덜란드어로 “숲 속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공원 내에는 우체국, 은행, 소방서 등이 있어 작은 도시를 연상케하며 대항해체험관, 노아의 극장, 천성 홀, 호라이즌 어드벤처 등의 시설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신비한 에셔는 착시 그림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화가 에셔의 착상을 바탕으로 극장 계단을 만들어 이용객들로 하여금 방향감각을 잃게하며, 대향해체험관은 거대한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에 맞추어 바닥이 움직이는 장치로서 17세기 네덜란드의 범선에 탄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노아의 극장에서는 환경오염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내용은 영화를 상영한다. 또 천성 홀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한 점성술을 보여준다.
호라이즌 어드벤처는 란(Ran)이라는 바다의 여신이 수세기 동안 네덜란드를 괴롭혀온 큰 홍수 중의 하나를 소개한다. 800 톤의 물로 홍수와 파도를 만들어내 실제와 같은 시뮬레이션 쇼를 보여 준다.
그밖에 전세계에서 가져온 카리용(carillons)과 종들을 전시한 일본 최초의 박물관카리용 심포니카(Carillon Symphonica), 동서양 도자기 제품을 모아 놓은 도자기박물관, 네덜란드 해상무역의 역사를 전시해 둔 선박박물관(Tall Ship Museum) 등이 있다. 하우스텐보스의 밤은 레이져불꽃쇼로 이국의 쌀쌀한 밤을 낭만으로 달구었다. 레이저불빛이 선을 긋고 불꽃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의 박수소리와 괴성이 하늘을 찔렀다.
하우스텐보스의 밤은 호텔의 수준이 좋은지라 푸근한 밤이었다.
2004.12.29(수)
뭐처럼 여유있는 아침시간이었다. 식사 후 방에서 휴식을 취한 후 하우스하우스텐보스를 다시 한바퀴 돌았다. 어제 보지 못했던 미술관을 보고 정원을 산책하였다. 일본사람들은 역시 모방의 명수였다. 그리고 잘 정리된 인공자연의 모습들이 깔끔하게 보였다. 이제 짐을 싣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하우스텐보스를 출발한 차량은 후꾸오까로 향한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또 달린다.
드디어 후꾸오까 이정표가 나오고 차량은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온다. 후쿠오카 캐널시티.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 시내로 들어선다. 일본 상인들의 난장이 보이고, 연예인들의 옷을 경매하는 모습이 보인다. 일본사람들과 사진도 찌고 가게에 들어가 살피기도하고 커피도 한잔하고…
이제 일본의 일정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버스는 다시 고속도로를 달린다. 차창에 펼쳐지는 잘 정리된 일본의 시골마을의 모습, 뭔가 잘 꾸며졌다는 생각이 든다. 해가 지고 시모노세키에 도착하였다. 항구에 짐을 내려놓고 육교를 건너서 100엔 샵에 들른다. 일본 쇼핑에서 미련이 남은 사람들이 마지막 쇼핑을 하는 것이다. 쇼핑백을 한, 두개씩 들고 일행들은 다시 항구로 와서 배에 오른다. 부관페리호 하마유호에 오른다. 저녁식사 후 선상에서 다시 한잔 술을 기울인다. 양주, 맥주잔이 서로 오가며 부딪치며 못다한 얘기의 꽃을 피운다. 갑판 위엔 온 바닷바람이 몰려와 사람들은 선실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선상 가라오케로 이동하여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른다. 일본사람, 캐나다사람, 한국사람… 국적과 상관없이 즐기고 또 즐긴다.
2004.12.30(목)
새벽 2시경에 배는 벌써 부산 앞바다에 도착하여 출렁이고 있었다. 달이 넘어가고, 별들이 넘어가고 해가 동쪽에 떠오를 무렵에 배는 입항하였다. 오륙도의 겨울추위에 까칠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5에서 6개의 섬이 보이련만, 내 눈에는 분명히 5개의 섬만 보일 뿐이었다.
부산쪽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부산에서 더 머무를 사람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10:15분 KTX를 타고 다시 서울로 향한다. 차창으로 겨울을 보다가, 자다가, 다시 얘기하다가… 13시경 기차는 드디어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이제부터 각자 헤어지는 것이다. 기차를 다시 타는 사람, 버스를 타는 사람…
14시경 집에 도착하였을 때엔 겨울바람이 더욱 거세게 몸 속으로 파고드는 듯 하였다. 5일 있으면 막내둥이 남규가 군대에 간다. 다시 자식을 군에 보내야하는 생각에 마음이 푹 가라앉는 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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