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도 파도
김춘기
왜, 우세요
오늘은 또
누님
우리 큰 누님
철딱서니 저 파도가
가슴 연신
때리지요
삶이란
줄줄이 파도...
그만 우세요
누님, 이젠
-《웃음 발전소》 발견. 2020
김진숙 추천의 말
한나절. 바다 건너 비양도가 보이는 금능마을을 걷는다. 김춘기 시인의 ‘비양도 파도’를 곱씹으며 천천히 따라오는 2월 햇살이 따스하다. 우리 누님, 누님이란 말속에 문득 나의 아버지가 만져진다. 꿈에도 찾아오시지 않던 아버지가 꼭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만 우세요, 누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수없이 파도를 넘으며 살아오신 누님 생각은 늘 쉽게 잠들지 않았다. 거나하게 취기가 돌아야만 철썩, 철썩, 하얗게 뱉어내는 고향의 무릎이자 언어였을 것이다.
오늘의 파도를 타고 아버지가 그리 부르시던 누님을 나도 따라 불러본다. 말없이 애잔하게 토닥여주는 시인의 파도를 따라 걷고 또 걷는 길의 끝에 마지막 파도가 힘없이 또 울고 있다. 그 곁에 시인이 있어 다행이다.
[출처] 2020, 내가 읽은 좋은 시조 /김진숙 작성자 시조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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