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쪽지/채천수
다리에 힘 빠지면 어디 잘못 다닌다고 노자 보내준 것 보름 전에 잘 받았다. 네 돈이 지팡이 아니가 참말로 고맙다.
갈대 두른 강경 포구가 가을 맛을 돋운다만 까탈스런 아비 입맛 물려준 것 다 내 죈데 내 대신 애면글면 사는 게 네 보기 늘 미안타.
간장 종지 하나 정도면 고봉밥도 뚝딱한다는 명란젓과 어리굴젓 눈에 들어 싸 보낸다. 키 크고 싱거운 놈과 간맞추며 잘살아라.
<시평>
그만하면 경로당에서 우리 며느리가 또 용돈을 보내왔다고 자랑깨나 했을 게다.
용돈을 잘 받았다는 핑계로 아들집에 무엇을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결국 선택한 것은 아들이 좋아하는 명란젓과 어리굴젓이다.
며느리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은 하면서도 달랑 쪽지 한 장으로 온갖 생색을 낸다.
까탈스럽고, 키 크고 싱거운 아들놈과 간 맞추며 잘 살라는 당부가 압권이다.
영락없는 현대판 시어머니다.
내 어머니는 해녀였다. 며칠 전 이 작품을 읽고 어머니 산소에서 봄 벌초를 하다가 이제는 용돈도 드릴 수 없고 소라나 문어 등의 해산물을 받지 못하는 고향이 참 서운했다. 오승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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