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헬 조선
김춘기
1.
무역선에 몰래 실려 거친 바다 건너왔지.
아가미 옆 파란 반점 블루길, 몸 가운데 검은 줄무늬 배스. 너희들 고향은 메콩강, 아니면 톤레샵호수. 낯선 눈빛, 두툼한 입술로 눈칫밥으로만 살아야 했지. 피부 빛깔 다르다고, 지느러미는 왜 톱날 같으냐는 텃세에 꼬리 마냥 흔들었지. 먹새가 좋아 피라미 참마자 종일 배를 채워도 허기는 끝이 없었지. 온몸 쥐어짜 알 쏟는 네게 연신 작살이 날아왔지. 그래도 여기 터를 잡아야 한다며, 들꽃 향 짙은 산굽이 드맑은 강 유영하고 싶은
물안개 꽃구름 피는 곳, 귀화 꿈꾸는 외래종들.
2.
시베리아 북풍이 왁자한 남동공단
프레스 톱니에 엄지가 잘린 너, 휴일도 반납하고 밤낮 일만 했지. 곱슬머리는 이발소가 필요 없겠다고, 황소개구리 눈이라고 놀림을 받아도, 우리 말귀 서툴다고 혀가 부르텄냐고 비꼬아대도 빙긋 웃어주기만 했지. 동짓달에도 컨테이너에서 한뎃잠 자며, 푼돈 월급 아끼고 아껴 적금통장 만들었지. 심신은 쇳덩이여도 얼큰한 짬뽕, 청국장, 김치로 밥상의 국적 바꾸었지. 마침내 맘 착한 영업부 노처녀와 가정까지 이뤘지. 설날 한복 입고서 사장님께 무릎 꿇고 절까지 하면서 한국인이 되고 싶다는
한겨울 초승달처럼 웃는 방글라데시 샤프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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