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위반
이대흠
기사양반! 저 짝으로 쪼깐 돌아서 갑시다
어 게 그란다요. 버스가 머 택신지 아요?
아따 늙은이가 무르팍이 애링께 그라재
쓰잘데기 읎는 소리하지 마시오
저번착에 기사는 도라가듬마는···
그 기사가 미쳤능갑소
노인네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
저번착에도 내가 모셔다 드렸는디
-시 해설-
시골길 터덜거리는 버스 안에서 무릎이 아픈 노인과 버스기사의 대화가 한편의 따뜻한 시로 우리들 가슴을 적시게 한다. 무릎이 아픈 노인은 한 걸음이라도 덜 걷고 싶다.
가능하면 집 가까이에서 내리고 싶어 노인은 “저 짝으로 쪼깐 돌아서 갑시다” 당당하게 기사에게 청한다. 기사 아저씨는 “버스가 머 택신지 아요?” 되받아치며 면박을 준다.
“저번착에 기사는 도라가듬마는···” 노인은 야속한 마음으로 무릎 사정을 봐서 저번 기사는 돌아가 주었다고 혼잣말을 한다. 그러자 “그 기사가 미쳤능갑소” 그렇게 돌아서 정차한 기사가 제 정신이냐고, 규정을 어기고 정거장이 아닌 곳에서 맘대로 서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못 박는 표현으로 거절한다.
하지만 마지막 연에 이르러 반전이 일어난다. “노인네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저번착에도 내가 모셔다 드렸는디“ 어쩌면 기사는 노인이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그 노인의 무릎을 알아채고 지난번처럼 저쪽으로 돌아서 잘 모셔다드리려고 마음먹고 있지 않았을까.
기사는 노인이 그새 기사를 몰라보도록 눈이 어두워졌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정해놓은 규칙이나 규정을 넘어서 인정미 넘치는 기사의 무뚝뚝함이 ‘아름다운 위반’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위트가 넘치는 구수한 지방어의 대화 속에서 정겹고 인간적인 삶을 가득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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