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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곽해룡 시인 동시 읽기

by 광적 2021. 1. 11.

곽해룡 시인 동시 읽기

 

 

엄마는 못 말려'

 

내가 수학 백점 맞은 날

엄마는

팔십 점 맞은 은수네 엄마랑

구십 점 맞은

지호네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몇 점 맞았는지 물어본다

 

내가 팔십 점 맞고

은수랑 지호가 백점 맞은 날

엄마는

은수네 엄마

지호네 엄마한테 전화 올까 봐

전화기를 꺼둔다

 

 

쥐꼬리

 

 

오늘은 우리 엄마

쥐꼬리 받는 날

 

엄마는 월급을 쥐꼬리라 한다

소꼬리라면

곰탕이라도 끓여 먹을 텐데

족제비꼬리 여우꼬리라면

목도리라도 하고 다닐 텐데

개꼬리도 다람쥐꼬리도 아니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쥐꼬리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어린 쥐들이 엄마 쥐의 꼬리를 물고

이사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위험한 집을 버리고 새로 살 집을 찾아가는

어린 쥐들에게는

털도 없고 때에 전 엄마 쥐의

그 길고 징그러운 꼬리가

동아줄보다 든든하고

털목도리보다 따뜻했겠지

 

오늘은 우리 엄마

쥐꼬리 받는 날

 

 

자장자장

 

 

 

자장자장 자장자장

멍멍개야 짖지 마라

꼬꼬닭아 울지 마라

 

내가 잠 안 온다고 떼쓰면

할머니는 자장가 불러 주셨다

 

우리 세은이 잠들며는

꽃밭에다 눕혀 주고

못된 대욱이 잠들며는

개똥밭에 눕혀 주마

 

친구랑 다투고 잠 못 드는 밤

할머니 자장가 들으면

친구에 대한 미움도 싹 가셨다

 

자장자장

오늘은 내가 할머니한테

자장가 불러 드린다

 

사진 속 웃고 계신

우리 할머니 자장자장

자장자장 오늘은

할머니 제삿날

 

 

할머니는 아직도

 

 

할머니는

맛있는 음식 보면

아빠 앞으로 밀어 준다

 

할머니는

출근하는 아빠 등에 대고

조심해라, 한다

 

할머니 눈에는 아빠가

아가로 보이는가 보다

 

아빠만 보면 할머니는

아직도

젖이 도는가 보다

 

 

가시물고기

 

 

누군가를 미워하는 동안

내 몸 속에서는

조금씩

가시가 자라났다

 

미워하는 친구를

찌르고 싶어

지느러미 끝에 숨겨 둔 가시를

치켜들 때마다

내 몸속 가시는

점점 자라났다

 

 

친구의 몸에 상처가 나고

아파하기를 바라는 동안

내 몸속 가시에

콕콕 살을 찔러

나만 아팠다.

 

 

바지랑대와 빨랫줄

 

 

바지랑대가

빨랫줄을 받쳐 주고 있다

 

빨랫줄이

바지랑대를 붙들어 주고 있다

 

혼자서는 서지도 못하는 바지랑대가

혼자서는 축 늘어지는 빨랫줄이

 

팽팽하게

하늘을 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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