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외출/허향숙

by 광적 2022. 2. 28.

외출/허향숙

 

 

 

  먼지처럼 쌓이는 말들을 털어 내고 싶었다

 

  시부모 때문에, 남편 때문에 불쑥불쑥, 시루 속 콩나물처럼 올라오는 말들을 거미줄 치듯 집 안 곳곳

에 걸어 두곤 하였다 하고 싶은 말 혀 안쪽으로 밀어 넣고 이빨과 이빨 사이 틈을 야물게 단도리하곤

하였다

 

  이말산 산자락 근방 카페 창가에 앉아 나만을 위하여 브런치 세트를 주문한다

 

  해종일 하늘을 보다가 빽빽이 들어찬 허공의 고요를 보다가 인체 혈관 3D 같은 한 그루 나무를

보다가 우듬지로 올라간 빈 둥지를 보다가 빈 둥지 같다는 생각을 들여다보다가

 

  카페에 여자를 벗어놓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어머니로 갈아입는다

'좋아하는 문학장르 >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곰국 끓이던 날/손세실리아  (0) 2022.03.07
나무와 광부/이선식  (0) 2022.02.28
새벽/이상국  (0) 2022.02.22
남자를 위하여/문정희  (0) 2022.02.16
걸어다니는 무덤/윤희상  (0) 2022.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