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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울다 염소/조현석

by 광적 2022. 6. 25.

울다 염소/조현석

 

 

 

비어 있던 속, 기름기 없던 뱃속으로
푹 삶아진 염소가 갈기갈기 찢겨져 들어왔다
술 몇 잔과 더불어 신선한 공기도 몇 됫박
소독되지 않은 단양 하선암 생수도 몇 컵
해체된 염소 몸이 남긴 갖은 부속물을
소주 반 잔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어
배 속 깊은 곳에 가두었다
밤새 되새김질하는 염소가 운다
울음이 깊을 때마다 몸이 요동쳤다
속 편해지려고 되지도 않은 되새김질을
나도 여러 번, 하고 또 했지만
날카로운 뿔에 받혀 상처가 난 듯 꾸르르륵…
더부룩했다, 밤새 염소가 풀밭이 아닌
융단 같은 위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놀았다
낮에 몸 부딪는 축구를 해서인지
왼쪽 어깨가 아파 오른쪽으로 돌아눕고
등이 배겨 배를 깔고 돌아누웠던, 아침이
다가오는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그 놈이 울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먼동 무렵에
잠 깨어 물안개 피어오른 계곡을 거닐 때
예전에 잠시 그곳에서 뛰놀던 염소가
세차게 방파제를 때리던 태풍 속 파도처럼 요동쳤다
빠르게 달려간 구식 화장실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
시끄럽게 괴롭히던 염소를 끄집어냈다
쫘르르 쏴아아아아아… 자신이 놀던 곳으로 염소는
회오리 물살에 묻혀 돌아가려던 것이다
찬바람 불고 찬비 내리는 단양 하선암 계곡
물가에 자리 잡고 앉아 몇몇이 두런거렸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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