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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時調

한라산이 아프다/김춘기

by 광적 2023. 2. 9.

한라산이 아프다/김춘기

 

 

 

   숨찬 청소 트럭 비탈 기어오른다.

 

   귀가 중 타이어에 밟힌 비바리뱀, 참개구리, 제주도롱뇽이 뼈만 남은 채 갑골문자가 되어 시멘트 길섶에 흩어져 있다. 서귀포 위생매립장 울 밖에서 만개하던 산딸나무 때죽나무가 돌아앉아 코를 막고 있다. 굴삭기 무쇠 이빨이 산허리를 찍을 때마다 깔끔좁쌀풀, 섬매발톱, 구름체꽃, 한라장구채가 몸을 파르르 떨며, 뒷걸음질이다. 덤프가 토사물을 게워놓자 악취가 안개의 등을 떠밀며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간다. 불도저는 한라산 옆구리의 포실포실한 흙을 밀어다 그 위에 다져 넣는다. 배 주린 산까치와 큰부리까마귀가 검은 비닐을 헤집으며, 머리 반쪽뿐인 북어를 서로 빼앗는다. 산책 나온 노루가 목 잘린 마가목을 올려다보고는 금세 산기슭으로 사라진다. 먹장구름이 떼를 이뤄 서풍을 타고 온다. 어머니 눈물 같은 비가 계곡의 울음을 오후 내내 적시고 있다.

 

   한라산 중턱 곳곳이 만성 복통 앓고 있다.

 

 

<시작 노트>

 

   서울의 하늘공원은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난지도가 산이 되어 억새 천국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수도권 쓰레기는 김포매립지로 운반되어 바다를 메우고 있다.

   제주도에는 제주시 회천동, 서귀포시 색달동, 안덕면 상천리, 남원읍 한남리 등 한라산 중산간에 위생매립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쓰레기를 받아내고 있다. 얼마 전 비 오는 날 서귀포 위생매립장을 일부러 방문하였다. 그날도 비를 맞으며 중장비가 일하고 있었다.

   행정당국은 철저하게 방수 처리를 하며 매립장을 운영한다지만,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김포매립지처럼 바다를 이용한다거나 인적이 없는 곳에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제주도는 만만한 게 한라산이다.

   그렇다고 쓰레기를 육지로 보낼 수도 없는 것. 보물섬이라는 제주에서 끝없이 배출되는 쓰레기는 과연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쓰레기는 인간의 수명보다 오래도록 살아남는 괴물인데. 우리 후손들이 또 살아가야 할 터전인데, 만성 복통 환자 한라산을 치료할 방도는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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