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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밭/時調

우크라이나의 봄/김춘기

by 광적 2023. 2. 19.

우크라이나의 봄

 

 

 

   흑해 연안 눈이 녹고, 키이우에 봄이 왔다.

 

   하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미사일 불꽃만 만발이다. 탱크 장갑차 무한궤도가 하늘도 구겨진 도시 언저리를 진종일 밟고 있다. 전투기 굉음이 쏟아지자 화염과 함께 무너지는 교외 화력발전소 높은 굴뚝, 탄흔 가득한 국립 중앙병원 수술실 바닥 깨진 링거병 조각조각들, 강변 애기동백 꽃잎처럼 흩날리는 젊은 병사들의 붉은 비명, 교문 곁 제일 큰 자작나무 밑동에 몸 숨긴 교복 차림 꼬맹이들 새파란 울음, 그 앞에 겉장 찢긴 역사 교과서 꼭 쥐고 누워있는 선생님 시신, 카시오페이아자리 별빛 두어 줄기 깔린 국경선 쪽으로 향하는 심야 숨죽인 피난민 행렬 발자국소리

 

   봄에도 우크라이나엔 겨울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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