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김기택
제대로 한 방 맞았다
바닥이 휘두른 펀치가 어찌나 세던지
눈두덩이 이 센티미터나 찢어지고 피가 터졌다
점점 높아지는 책장을 정리하고 있을 때
내 몸을 받쳐 주던 의자가 발에 밟히는 게 불편했던지
제 몸을 살짝 뒤틀었는데
순간 중심을 잃은 다리는 의자에서 껑충 뛰어올랐고
머리는 의자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때 바닥이 솟구쳐 올라
왼쪽 눈과 뺨을 세차게 갈겼던 것이다
늘 발밑에만 있어서 바닥이었는데
늘 보아도 보이지 않아서 바닥이었는데
몸통이 고꾸라지는 바로 그 순간
바닥은 머리 위에 있었다
큰 절을 받듯 높은 곳에 앉아 머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머리가 바닥에 접속되는 순간
별들이 있었다
어디서 나왔는지 수많은 별이 번쩍번쩍 튀어 올랐다
바닥에 그토록 많은 별이 있는지 몰랐다
그러나 얼굴이 피를 흘리며 고개를 들자
별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바닥은 재빨리 발밑으로 내려가 납작 엎드렸다
바닥은 얼굴을 때릴 의도가 없었는지 모른다
자신이 오히려 얼굴에게 맞은 거라고
종일 누워만 있는 평면이 어떻게 남을 때릴 수 있겠느냐고
항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닥은 평온했고 얼굴은 화가 났다
바닥은 멀쩡했고 눈탱이는 푸르죽죽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렇다고 바닥이 난폭하다는 건 아니다
발이 쿵쿵거리며 뛰어다녀도
오징어볶음과 함께 떨어진 접시가 깨져 사방으로 흩어져도
늘 무심했고 평평했고
언제나 없는 듯 제자리에 있었다
그렇다고 의자가 성깔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고
제 등에 엉덩이를 태운 채 순하게 서 있기만 했다
그러니 누가 누굴 때린단 말인가
나는 바닥과 그런 사이가 아니다 의자와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처음부터 주먹은 없었고 구타도 없었다
맞은 놈과 맞을 짓과 눈탱이 밤탱이만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제 안에 깊이 숨어 있는 별들이 일제히 빛을 터뜨리는
아주 드문 순간에는
저 높은 곳에 떠 있는 바닥이 있었을 뿐이다
―계간 《백조白潮》 2023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