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장치의 삼각도
임 보 (시인, 충북대학교 교수)
시를 설명하기 위해 편이상 내용과 형식으로 구분하여 따져보기로 한다.
훌륭한 시는 좋은 내용이 적절한 형식을 빌어서 표현된 글이다. 나는 시에서의 좋은 내용은 시정신이 주도하는 것으로 보며, 시다운 표현 형식을 시적 장치라는 말로 설명해 오고 있다.
말하자면 이상적인 좋은 시는 시정신이 시적 장치를 통해 표현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적 장치 곧 시다운 표현 형식이 무엇인가를 따지는 일이 간단하지가 않다. 이것을 탐색하는 것이 우리시 이론을 세우는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생각된다.
일반 산문과는 달리 시에서 즐겨 사용하는 표현법 곧 수사적 특성은 무엇인가.
나는 훌륭한 작품이라는 평판을 얻은 기존의 시들을 바탕으로 해서 시적 표현의 특성을 고구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첫째, ‘감춤’(은페지향성)의 특성이다. 시적인 문장은 다른 산문과는 달리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표현하기보다는 은근히 감추어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다. 상징이 그 대표적인 기법이다. 주지하다시피 상징은 추상적인 정황을 구체적인 사물을 빌어 표현하는 기법이 아닌가. 그런데 그 추상적 정황[主旨]은 숨겨져 있고 구체적 사물[媒體]만 드러나 있기 때문에 독자는 그 본의(本意)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 이러한 은폐지향적 성향은 인간의 이야기를 동식물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우의(寓意)나, 자기의 사정을 남의 입장으로 옮겨서 표현하는 전이(轉移) 등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공유소(共有素)나 원관념[主旨]이 생략된 은유의 구조도 이런 성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불림’(과장지향성)의 특성이다. ‘백발이 삼천 장’ 같은 표현은 시에서 자주 만나는 과장법이다. 시에서 즐겨 쓰이는 비유도 과장이 담겨 있을 때 능률적으로 살아난다.
임산부의 큰 배를 가리켜 ‘남산만하다’(가)나 ‘간장독만하다’(나)라고 비유했을 때, 실제의 정황에 가까운 (나)보다는 과장이 크게 실현된 (가)가 보다 설득력을 지닌다.
시적 비유의 속성이 사실대로의 적확성보다는 과장인 것을 알 수 있다. 논리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역설이나, 비인물을 인물로 표현하는 의인법도 과장의 범주에 든다고 볼 수 있다.
셋째, ‘꾸밈’(심미지향성)의 특성이다. 훌륭한 시인은 예로부터 시어의 조탁(彫琢)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적절하고 아름다운 시어를 얻기 위해서였으리라. 요즈음 시어와 비시어를 구분할 것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지만, 이는 일상어도 시어로 쓰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지 아름다운 시어[雅語]가 따로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균형과 조화를 위해 대구와 대조 같은 대우(對偶)의 틀을 구사한다든지, 압운과 율격 등으로 운율을 실현시켜 율동감을 자아내게 하는 것 등이 다 미의식에서 발현된 장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지적한 세 가지 특성과 그 예로 제시한 기법들을 다시 정리해 보이면 다음과 같다.
<감춤> ― 상징, 우이, 전이, 은유
<불림> ― 과장, 비유, 역설, 의인
<꾸밈> ― 아어(雅語), 대우, 운율
위의 분류를 보면 ‘비유’는 <불림>의 속성으로 판단했는데, ‘비유’의 일종인 ‘은유’는 <감춤>의 속성을 지녔다고 구분한 것을 알 수 있다. 얼핏 보면 모순 같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어느 기법이 하나의 속성만 지닌 것이 아니라 대개는 두 개의 속성을 아울러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상징’은 <감춤>의 속성으로 분류했지만 <꾸밈>의 속성도 없지 않고, ‘운율’ 역시 <꾸밈>의 속성뿐만 아니라 <불림>의 속성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앞의 분류는 설명의 편이를 위해서 더 기운 쪽을 따라 그렇게 구분했을 뿐이다.
그러니 이와 같은 획일적인 분류는 적절한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삼각도를 다시 그려보기로 한다.
심미? 과장? 은폐의 세 꼭지점을 잇는 정삼각형을 설정했다. 이는 곧 이 세 속성을 바탕으로 하여 시적 표현들이 실현됨을 의미한다. 속성들에 경도(傾倒)되는 정도를 내 나름대로 판단하여 기법들의 위치를 선상에 배치했는데 문제점이 없지 않아 보인다. 경도에 대한 판단도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고, 어떤 기법은 세 속성을 아울러 지닌 것도 같아서 일직선 위에 배열한다는 것이 흡족하지만은 않다. 앞으로 관심 있는 분들의 질정을 얻어 기법들의 위치를 삼각형 내부로 끌어들이는 시도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시적 장치 곧 ‘감춤’, ‘불림’, ‘꾸밈’의 세 가지 특성을 함께 아우르는 말로
나는 ‘엄살’이라는 우리말을 선호한다. 시적 장치는 곧 엄살스럽게 표현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시는 승화된 욕망이 엄살스럽게 표현된 짧은 글이라고 정의할만하다.
* 구조주의 문학이론에서는 작품을 내용과 형식으로 구분하여 따지는 것을 달갑게 생각지 않는다. 그 이유 는 한 작품의 구성 요소 가운데는 내용과 형식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 나 구분하기 곤란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구분할 수 있는 요소도 많고, 설령 구분하기 곤란하다고 해도 내용과 형식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시정신을 나는 선비정신과 상통한 것으로 보고 진?선?미와 염결 절조 친자연을 지향하는 정신으로 설명 하면서 ‘시정신의 삼각도’를 제시한 바 있다..
* 공유소 : 비유의 구조에서 주지와 매체가 함께 지니고 있는 동일성이나 유사성이다.
예를 들어 ‘쟁반같이 둥근 달 ’에서 ‘둥근’이 ‘달’(주지)과 ‘쟁반’(매체)이
공유하고 있는 동일성이다. 그런데 ‘A는 B다’의 은유 구 조는 직유와는 달리 공유소가 생략되어 있다.
'좋아하는 문학장르 >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정철 (0) | 2023.12.07 |
---|---|
네안데르탈 11/박우담 (0) | 2023.12.06 |
아침 이미지/박남수 (0) | 2023.12.06 |
물의 결 / 박우담 (0) | 2023.12.06 |
크레바스에서/박정은 (0) | 2023.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