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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할아버지 휘파람 소리/김왕노

by 광적 2024. 7. 6.

할아버지 휘파람 소리/김왕노

 

 

   할아버지는 숲에 나가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할아버지 휘파람소리는 만파식적을 부는 소리 같았습니다. 할아버지의 푸른 휘파람 소리는 세상의 갖가지 물결이 잦아들고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큰 분쟁 작은 작은 분쟁이 사라지라는 염원이었습니다. 할아버지 휘파람소리로 갖가지 꽃이 피고 아이들의 크고 작은 꿈이 무럭무럭 키우는 단비 같았습니다. 개구쟁이 내가 동네 아이와 한바탕 코피 나도록 싸움질을 하다가도 할아버지 휘파람소리가 나면 마법에 걸린 듯 그치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휘파람을 길게 불면 숲속에 이름 모를 새도 재잘거리며 후렴을 넣듯 노래했습니다. 할아버지 휘파람 소리를 알아듣는 골목의 사금파리는 더욱 반짝였고 앵두는 더욱 붉었습니다. 할아버지 휘파람 소리가 세수를 씻겨준 듯 할아버지 휘파람을 듣는 할머니 얼굴은 더욱 해맑아져 오물거리는 입으로 빙그레 웃었습니다. 할머니 처녀일 때 할머니만 알아듣는 신호였던 할아버지 휘파람 소리라 때로 할아버지 휘파람을 듣는 할머니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랐습니다. 할아버지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서라는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 때 6.25 때 잃은 전우가 생각나는지 그렁그렁한 할아버지 눈가였습니다. 세상에 좋지 않는 날 할아버지 휘파람 소리는 세상 어느 강물보다 슬픔으로 더 깊었습니다. 꽃 피는 봄날엔 분분이 휘날리는 꽃잎과 가볍게 휘날리던 휘파람소리였습니다. 할아버지 휘파람소리를 날마다 듣던 형은 할아버지 휘파람소리에 물들어 트럼펫을 부는 딴따라가 되었습니다. 전방부대에서 취침나팔 기상나팔을 부는 아름다운 나팔수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오월의 아카시아 숲에서 밤하늘을 향해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트럼펫을 미친 듯 불기도 합니다. 지금도 축하자리서 늠름하게 팡파르를 울리는 형입니다. 할아버지 휘파람소리 지상에서 삭 거두시고 떠나셨지만 할아버지 마당에 오동나무 한 그루로 돌아오셔서 해마다 보랏빛 오동나무 꽃이 된 휘파람을 어김없이 세상에 뚝뚝 떨어뜨리십니다. 민무늬 세상에 송이송이 떨어져 곱게 수놓아 갑니다. 북벌하고 왜를 수장시키라는 할아버지 누대의 말씀도 보랏빛 오동나무 꽃과 뒤섞여 송이송이 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