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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해변역 새벽 해변역 / 김춘기 허기 실은 완행열차 어둠 실어내는 새벽 물마루 밀며, 밀며 돌고래 떼 몰려오면 온 가슴 열어젖히는 황금빛 해변 역사驛舍 바다보다 푸른 하늘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늙은 어부 시름 모두 거품 되어 부서지는 곳 만선의 깃발 올리며 파도가 되는 늙은 가장 눈 맑은 새벽 별들 갯바위에 옹기종기 언덕 위 겨울잠 깬 집 술잔처럼 모여 앉아 멸치회 막소주 사발에 햇살 부어 마시고 있다 2008. 3. 1.
개나리꽃 개나리꽃/김춘기 늦봄이 배경이던 흑백사진 속 얼굴들 회충약에 곤히 취해 깡보리밥조차 하루쯤은 굶고 똥개가 되어 굴렁쇠 굴리다가 논두렁에 벌렁 누워 횟배를 쥐고 학교 갈 수 없다고 거짓말로 둘러대던 두둥실 허공을 굴리던 노란 눈동자 불알친구들 2008. 3. 1.
청명 청명 김춘기 강가에서 붓을 꺼내 물감 찍는 산능선 골짝마다 타는 불길 아버지 가시는 길 저음의 뻐꾸기 울음 봄비에 젖고 있다 길 잃은 햇살 머물던 자리 목 쉰 바람 불러놓고 백양나무 우듬지에 문상 온 새들 둘러 앉아 해종일 다비식 중인 산, 하늘도 눈이 붉다 2008. 3. 1.
암탉의 비애悲哀 암탉의 비애悲哀 김춘기 눈곱 낀 보리수 눈알 종일 궁굴리면서 곰팡내 피어나는 골방에서 아메리카 음식만 먹고, 백색 항생제쯤은 조미료라며 밤낮의 구슬을 꿰고 꿴다. 미국은커녕 옆집 마실 한번 못 가보고,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줄 아는 너. 눈부신 알전구를 태양이라며, 물 한 모금 마시고도 경배 또 경배. 주인장에겐 평생 놀고먹어 미안하다고, 두 발 모으며 고개 꾸뻑꾸뻑. 백야의 천국이라며 토막잠도 아끼면서 혼신을 다해 알을 낳고, 또 낳고. 그러나 온몸 맥이 탁 풀렸다. 꿈에서도 상상치 못한 어느 날의 혼절할 그 귀띔 무정란! 생명 없는 생명을 낳는 숨만 쉬는 기계라는… 2008.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