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철새탐험
항상 기다려지는 토요일이었다. 오늘은 고양시에서 새에 관심이 많은 교사들이 처음 모여서 철새탐험을 하는 날이다.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교육청의 과학실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모니터에서 상영되고 있는 철새 이야기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오늘의 일정은 곡릉천과 임진강 일대에서 겨울을 보내는 철새들에 대하여 탐사하는 것이다. 대표 강사인 벽제초등학교 박병상 선생님이 오늘의 일정을 개괄적으로 알려주었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킨텍스 나들목을 지나 자유로에 진입한다. 평소 승용차의 엑셀을 밟으며 씽씽 달리기만 하던 길이었지만, 버스에서 시선을 내리깔며 보고있는 강변의 풍광은 초겨울의 잔잔한 파도가 물결치는 것처럼 흥미롭게 다가오고 있었다.
맨 먼저 새로 건설되는 일산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일산과 김포를 동서로 가르는 한강 줄기의 양쪽을 연결하여 두 지역을 이웃으로 만들기 위하여 세워지는 다리이다. 추수가 끝난 논바닥엔 비닐로 둥글게 포장한 볏짚들이 하얀 드럼통처럼 누워서 갈 곳을 기다리고 있었다. 편도 4차선으로 확장된 파주 쪽으로 향하는 겨울 길목의 자유로는 또 다른 세상이으로 다가왔다.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작년부터 돌곶이 축제로 유명해진 심학산을 뒤로 휙 지나가고 있다. 파주 출판단지를 지나서 첫 번째 탐사지역인 곡릉천에 닿아 버스가 시동을 끄고 있다. 일행이 과일을 담은 포대를 거꾸로 들었을 때 빠져나오는 것처럼 쏟아져 나왔다. 양주시 철봉에서 시작하여 오두산 통일전망대 아래쪽을 통과하여 한강에다 마지막 짐을 푼다는 곡릉천, 금년부터는 낚시금지 지역으로 새들의 천국이 되고 있다는 곡릉천이다.
일산의 턱밑에 있는 이곳에 오늘 처음 발자국을 찍은 것이다. 오늘따라 한겨울 황소바람이 옷깃 속으로 파고든다. 손이 시리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고추처럼 맵게 느껴졌다. 곡릉천에 내리자마자, 기러기, 흰뺨검둥오리, 가창오리, 개리, 가마우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비상과 하강을 반복하면서 우리 일행을 특별한 손님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다니는 기러기, 빠른 날갯짓으로 군무를 펼치는 청둥오리, 얼굴에 태극무늬 선명하게 그려놓고 바둑판의 회돌이 모양으로 뜨고 내리면서 먹이를 찾아다니는 가창오리 떼의 카드섹션 모습은 장관이었다.
송촌교에 올라 바람을 밀어내며 뱀처럼 굽어진 곡릉천 줄기를 바라본다. 매일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이 드나든다는 그 곳은 서해 바다처럼 하천의 바닥이 뻘로 이루어져 있었다. 강의 하류에 해당하는 이곳은 바닷새들이 날아와 육지 새들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국경마을 같았다. 가을빛으로 탈색된 하천의 둔덕엔 초겨울의 차디찬 바람이 갈대를 흔들면서 새들과 조화를 이루어 추수감사절 잔치판처럼 시끌시끌하였다.
버스는 다시 자유로 위를 달려 교하지역에 다다른다. 한강과 임진강물이 만나는 곳, 두 강이 각각 수백km씩을 달려와 격렬하게 살을 섞는 곳, 그 곳이 交河 땅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하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방조제가 없는 하구로서 강이 바다와 직접 손을 잡는 소중한 곳이다.
통일이 되어도 이곳은 이대로 보존되어야할 장소인 것이다. 교하벌에서는 매스컴의 요란한 선전과 함께 한창 신도시 개발로 아파트의 첨탑들이 막대그래프처럼 하늘로 솟고 있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오두산 통일전망대 쪽의 강 건너엔 반세기 이상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곳, 북한 땅이 보인다. 함경남도의 마식령에서 출발하여 강줄기의 2/3을 북에 두고 온 임진강이 흘러내려온 북한 쪽의 산들을 되돌아본다. 그 산들은 남쪽의 푸른 산과는 달리 옷을 모두 벗어버린 황토빛 민둥산이었다. 땔감 부족으로 주민들이 나무를 모두 베어 그렇게 되었다는 할아버지의 등 같은 저 산의 능선들, 그것은 우리나라 60년대의 어렵던 시절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픈 버스는 문산에 다다르자, 노란 간판이 달린 음식점에 사람들을 모두 내려놓는다. 간판이 집체만한 반구각이라는 음식점에 우리의 점심이 예약되어 있는 것이었다. 점심 메뉴로 나온 메기 매운탕에 백세주가 초겨울의 냉기에 얼어붙은 몸들을 크림처럼 녹이고 있었다. 그리고 몇 잔씩의 알코올이 사람들의 마음까지 데워주고 있었다.
따끈한 커피 잔을 내려놓자, 버스는 임진각 쪽으로 향한다. 방향을 이리저리 틀던 버스는 문산나들목을 지나 마정리, 장산리, 운천리 이정표를 눈으로 찍으면서 장산리로 가고 있었다.
장산리의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 임진강을 내려다본다. 옛날에는 우리나라 담수어의 70%가 살았었다는 임진강이 두 갈래로 나눠 흐르면서 가운데에 흙을 쌓아 만들어 놓은 그 땅이 초평도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눈앞에 나타났다. 임진강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 섬 근처에 와서 함경남도 마식령의 작은 샘에서 출발하여 250km 이상을 달려와 마지막으로 몸부림치는 것이었다.
망원경으로 산 능선을 주시한다, 멀리 완만한 산들이 안개에 잠겨 희미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몇 년 전 판문점으로 가는 길목에서 보았던 그 태극기와 인공기가 우리에게 손짓을 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강변엔 해마루촌이라는 민통선 안의 마을이 마치 봄날 아침의 햇살을 받은 것처럼 환하게 내 시선을 끌고 있었다.
군인들이 만들어 놓은 지하 초소를 들렀다가 올라와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는 전투기를 닮은 독수리 몇 마리가 우아한 모습으로 날고 있었다.
양쪽 날개를 모두 펼치면 2.2m쯤 된다는 독수리, 맹금류의 대표로서 새와 짐승들의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해 왔던 거대한 새, 그러나 오늘날의 그 독수리는 죽은 동물들이나 먹고 근근이 살아가는 들판의 환경미화원 역할 밖에 하지 못 한다고 강사는 목청을 높여 설명을 하고 있었다.
버스는 다시 움직였다. 그곳은 반구정이었다. 고려 말에서 조선조 초기까지 명재상이었던 방촌 황희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의 벗이 되어 여생을 보냈던 강남의 압구정과 대비가 되는 곳이다. 임진강 기슭의 기암절벽에 세워져 원래는 낙하정이라고 불렸다는 반구정, 오늘도 바다처럼 밀물과 썰물이 강물의 수면을 오르내리게 하여 아름다운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저녁 해가 물결에 반사되어 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만들고 있었다. 해가 지면서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고 있다. 강변의 단풍나무가 지난해의 아픈 사연들을 새빨간 빛깔로 물들이며, 그림일기를 쓰고 있었다. 일행은 버스에 올라 다시 자유로로 진입하였다. 잠시 버스를 대어놓고 문산천 하구의 갯벌을 본다. 그곳엔 플랑크톤과 먹이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철새들이 사단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물에는 오리가 열심히 주둥이를 뻘에 넣었다 빼고, 모래톱에는 기러기들이 앉아서 열심히 만찬을 즐기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기러기 떼가 모두 먹이를 먹고 있을 때에도 한, 두 마리의 기러기들은 반드시 고개를 들고 주변에서 수상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고 경계를 한다. 몸집에 비해 유난히 긴 부리를 가졌다는 도요새, 뻘 속에다 그 목을 깊숙이 집어넣어 먹이를 찾아낸다는 도요. 머나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베리아까지 바다와 대륙횡단을 한다는 그 도요새는 종류에 따라 부리의 길이가 다양하다고 한다.
버스에 다시 올라 길 옆에 펼쳐진 임진강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곳엔 수 백 만 마리의 황소 떼가 누워있는 것 같은 황금 벌판이 강물을 밀어내며 끝없이 이어진다. 기러기 떼와 오리 떼가 가족을 이루고 마을을 각각 형성한 채, 머드팩을 하면서 북쪽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임진강에 물이 빠져나가고 만들어진 이름없는 섬을 초록도라고 명명하면서 차는 서울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잠시 후 눈에 번쩍 띄는 것이 있었다. 황토빛 광목을 쭉 펼쳐놓은 것 같은 강변의 갈대밭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것이었다. 버스에 몸을 실은 일행이 모두 일어나 망원경을 꺼내고, 카메라의 버튼을 열심히 누르고 있었다.
날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버스는 고양교육청에서 사람들을 모두 내려놓고 자신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참 오랜만에 자연과 함께 한 하루였다. 초겨울의 차가운 날씨였지만,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있던 오늘 하루는 어머니의 나라처럼 마음이 푸근하였다. 그러나 새들이 아파트 숲이 치솟을수록 그 모습을 감추는 것이 자꾸만 아쉬웠다.
(2007. 11.1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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