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의 만남
오후의 나른함을 노크하 듯 전화가 울린다. 김춘기 선생이오? 김석범입니다. 20년 전 강릉고등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지금은 강원도 속초의 설악중학교장이었다. 잠시 후 전화가 또 나를 부른다. 그 때의 제자 고창모였다. 강릉고등학교 제28회 졸업생, 당시 내가 담임을 맡았던 3학년 7반 반장이다. 나를 찾는 전화가 시간을 거의 겹쳐서 온 것이다.
전화에서 나오는 내용은 강릉고 제28기 졸업 20주년 행사를 2011년 6월 11일 강릉비치호텔에서 한다는 전갈이었다. 이에 따라 담임 12명의 은사들을 함께 초대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담임들은 다 찾았는데, 나를 마지막으로 찾는 중이라는 전화였다. 하긴 12명의 담임 중 다른 11명은 현재 강원도에 근무 중이다. 나만 경기도로 전출되었기 때문이리라. 며칠 후 초대장이 배달되었다. 호텔에 숙소를 예약해 놓았으니, 집사람과 꼭 참석해 달라는 제자 창모의 문자메시지도 이어서 왔다.
행사하는 그날은 토요일. 나는 아내와 고양시 화정터미널에서 아침 9시 버스에 올랐다. 초여름의 오전을 가르며 차는 바로 외곽순환고속도로 진입한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유월의 풍광이 나와 아내를 들뜨게 한다. 구리시를 지날 때쯤, 마음이 모두 차창 밖에 가있는 내 귀로 운전기사의 멘트가 들어온다. 주말이라 영동고속도로가 붐빈다고,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로 우회할 것이란다. 경춘가도의 곁으로 흐르는 북한강이 낮은 포복으로 서울로 향한다.
작년 ‘영천사, 한낮’이라는 시로 강원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러 아내와 춘천에 왔다 간 이 길을 다시 달린다. 홍천, 횡성을 지나면서 창밖에 인삼밭이 눈에 보인다. 산 아래에서 얼굴을 내미는 전원주택들이 액자를 전시해 놓은 것처럼 눈에 들어온다. 퇴직 후 제주도 서귀포 덕수리에 저렇게 집을 짓고 살자고 아내와 약속을 하면서 달린다. 아내의 손이 따뜻하다. 버스는 새말에서 영동고속도로로 머리를 넣는다.
옛날처럼 속을 울렁거리게 하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아리랑고개가 아니었다. 산은 구멍을 뚫고, 계곡 사이엔 다리를 놓았다. 길은 최대한 직선코스가 되려고 노력한 흔적이 완연했다. 아카시아 향기가 차창을 통과하여 콧속으로 들어온다. 평창에서부터는 신록이 더욱 푸른 빛깔을 덧칠하고 있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원하는 글귀들도 보인다. 올림픽이 개최되어 강원도가 한껏 발전했으면 좋겠다.
버스는 드디어 율곡 이이의 외가 오죽헌이 있는 강릉에 진입한다. 내가 20년 전 강릉고등학교에서 청춘을 불태우며 제자들과 고락을 함께 한 곳이다. 버스는 강릉터미널에서 잠시 시동을 끈다. 아내와 갈 길을 망설이다가 일단 터미널 근처 식당으로 들어간다. 나는 강릉막국수를, 아내는 순두부를 시켰다. 여름이 급하게 와서 그런지 온몸에 땀이 흘렀다. 식당을 나와 근처의 관광안내소엘 들른다. 관광지 팸플릿을 보는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주문진에서 경포 쪽으로 향한다는 이사부크루즈. 바로 아내와 시외버스를 탔다.
오른쪽 창가에서 동해바다가 계속 버스를 따라온다. 주문진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아내와의 여행인지라, 우리는 연신 시선을 맞추며 여정을 만든다. 택시에서 내려 주문진 수산시장으로 들어간다. 팔뚝보다 굵은 대구, 먹물을 뿜으며 유영중인 오징어, 몸을 뒤집고 누워있는 손바닥 두 개만한 게, 싱싱한 해삼․멍게, 그리고 넙적한 자연산 도다리… 바닥 축축한 어시장 아이쇼핑이 낭만의 파도를 보는 것 같다. 천막 밖의 날씨가 덥다. 등이 축축하다. 배 곁에서 사진 몇 장을 찍는 데 얼굴이 햇살이 내 눈을 찌른다. 잠깐 걸어 항구 쪽의 쉼터에 자리를 잡았다. 냉커피로 얼른 텁텁한 입을 축인다.
시간에 맞춰 유람선에 올랐다. 원색의 옷차림의 사람들. 이야기소리에도 색깔을 입히고 있었다. 배의 꼭대기 층에 아내와 자리를 잡았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함께 부부 사진도 찍었다. 바다에 취해 초여름 하늘에 취해 뱃전에 기대어 수평선 쪽을 본다. 참 잘 왔다고 아내가 내 손을 잡으며 웃는다. 그때, 우리 옆자리에 인상 좋은 중년남자가 함께 앉을 수 있느냐고 한다. 처가의 식구들과 유람을 왔단다. 장인께서 7남매에 손자까지 합쳐 41명의 가족을 대동했단다. 그 중 사위, 며느리, 딸들이 우리와 함께 한다. 소주잔이 오고간다. 우리 부부도 그들과 이야기를 섞으며 세발낙지를 안주 삼아 이야기를 이어간다. 선글라스 차림의 70세를 넘은 장인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살아야겠는 생각이 들었다.
배는 해안선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미동도 없이 강릉 쪽으로 향한다. 그야말로 유람이다. 아내가 아래층이 궁금하다고 내려갔다. 나는 아내가 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낯선 전화번호 신호가 울린다. 아내였다. 공연이 있다고, 빨리 내려오란다. 반라의 러시아 무용단이 캉캉 춤을 춘다. 훌라후프로 연기도 한다. 손바닥에 불이 나게 박수를 쳤다. 허리가 매끄럽고 날씬한 무용수들이었다. 바다가 궁금한 나, 아내와 갑판 쪽으로 다시 올라간다. 그런데 2층에서도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외국인 가수가 귀에 익은 노래 'The Power of Love'를 부른다. 나는 거기에서 아내와 또 멈췄다. 무대로 나가자고 아내가 나를 유혹한다. 내 발길이 아내에 끌려 나간다. 아내와 흥겹게 춤을 추었다. 우리 부부의 공연도 유람선에서 한 몫을 했다. 관중들이 박수도 터졌다. 아까 배 위에서 몇 잔 한 것이 기분까지 흥을 돋우어 주었다.
다시 갑판에 올라 아내도 잊고, 바다에 취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목적지가 경포로 알았던 배. 그러나 다시 돌아와 주문진에서 우리를 내려놓고 있었다. 경포에서 있을 행사에 맞추기에는 시간이 빠듯하였다. 바로 터미널에 가서 버스표를 샀다. 그러나 버스 시간 때문에 바로 환불을 요청하였다. 급하게 택시를 잡았다. 경포에 다다를 쯤 김석범 교장으로부터 지금 어디냐고 전화 독촉이다.
길이 안 막혀 거의 시간에 맞춰 경포비치호텔에 도착하였다. 20년 전 동료들이 이미 다 도착해 있었다. 머리도 희끗희끗하고 중후해진 모습들, 순간 낯선 기분이 스쳤다. 1반 담임부터 적어본다. 김종래 설악고등학교 교감, 홍병국 원주시 호저중학교 교사, 최종근 정선정보공업고등학교 교장, 한효연 북평여자고등학교 교감, 김석범 설악중학교 교장, 허필구 주문진중학교 교사, 이성우 강원과학고등학교 교장, 권성혁 임계고등학교 교감, 속초에서 교장으로 퇴직하신 황연근 선생님, 이기윤 율곡중학교 교장이다. 악수를 나누며 20년을 건너 뛰었다. 그래도 짧지 않은 세월, 모두 건재하시다. 오늘 유일하게 참석하지 못한 노석현 선생님은 양양고등학교 교사로 계시단다.
행사도우미들로부터 가슴마다 꽃이 달린다. 은사님 입장, 마이크소리와 함께 담임들이 행사장으로 들어간다. 제자들의 박수가 폭포소리를 낸다. 고3이었던 제자들이 20년 만에 우리를 맞이한다. 국민의례에 이어 단상에 나온 은사님들 소개가 이루어진다. 한분씩 소개할 때마다 팡파르가 울렸다. 내 차례, 온몸의 혈관으로 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행사 준비위원장 이현석 변호사의 인사말, 동창회장, 학교장의 말씀이 바통을 이었다. 강릉고 출신인 강릉시장의 영상메시지도 있었다. 은사님 선물증정, 장학금 전달 등 행사가 그 뒤를 이었다. 드디어 우리 7반 제자들의 얼굴이 보인다.
20년의 세월의 오버랩이다. LS전선 책임연구원 반장 고창모, 독일계 IT회사에 근무하는 권순웅, 맵퍼스라는 벤처기업의 박종국, 강원랜드 감사과장 송봉규, JSG연구소장 최원기, 귀농하여 양양에 살고 있다는 탁성민, 신장이식 수술하고 건강을 되찾은 김현, 춘천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임준혁이와 얼굴을 마주 본다. 술잔에 이야기를 가득 담아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다. 제자들에게 맥주를 한 잔씩 따라주는 기분이 군자삼락의 한 부분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2학년 때 내가 담임이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이흥규, 단국대학교 공과대학교수 이정진이도 인사하러 왔다. 참 반가웠다. 교수가 된 흥규는 자기가 학교 다닐 때, 말썽만 피웠다고 한다. 실은 그렇게 멋진 제자였는데 말이다.
만찬이 끝나고 학급별 사진촬영이 있었다. 세상의 중심점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소중한 제자들과 파이팅을 외치기도 한다. 다음은 화합의 한마당이다. 가수들이 나오고, 댄서들이 몸을 흔든다. 여흥시간이 파도처럼 출렁인다. 마지막으로 담임들 노래하는 시간이다. 우리 반 아이들이 ‘7반, 7반’을 외친다. 당연히 내가 1번으로 당첨되었다. 나는 1번으로 무대에 섰다. ‘고래사냥’을 댕겼다. 제자들이 내 뒤에서 백댄서가 되어주어 고래를 맘껏 잡았다. 이어지는 담임들의 노래가 이어진다. 다운타운의 가수가 다 모인 것 같았다. 여흥이 끝날 때쯤엔 사제동행으로 인간열차를 만들어 무대를 돌았다.
제자들과 헤어져 숙소로 들어갔다. 아내와 신혼여행 같은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내와 잠시 심야 해변 데이트로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갔다. 아침 일찍 깨어 경포바다로 나갔다. 파도소리가 우리 부부를 불렀다. 모래를 밟으며 나도 아침 바다가 되었다. 구름 사이로 이미 태양은 떠올라 있었다. 파도를 배경으로 카메라 속에 내 몸을 넣었다. 아내의 웃음이 카메라로 들어왔다. 내 마음은 하늘로 날아오르며 잠시 갈매기가 되었다. 경포호수로 발길을 옮겼다. 호수에는 며칠 전 뉴스에 보도되었던 파래가 그득하였다. 한쪽에서는 파래를 제거하다가 만 흔적이 보였다. 하지만 가죽나무 사이로 왜가리가 자태를 뽐내면서도, 인간들이 왜 이 모양이냐며 날개짓 하는 모습이 내 눈으로 들어왔다. 하수구에서 흘러나오는 폐수가 코를 찌르기도 하였다. 5개의 달이 뜬다던 경포호수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철새 관찰부스에 들러 새들을 찾는다. 두루미 몇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역시 강릉은 관광과 생태도시로 거듭 나야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식사를 한다. 초당순두부집이다. 원래 계획하였던 원조할머니 집으로 가기엔 구두를 신은 발이 견디기 힘들었다. 경포에서 제일 가까운 음식점이었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고 막상 맛을 보니, 입에 착 감기는 동해바다의 맛이었다. 우리는 밥 한 공기씩을 다 비웠다. 강릉의 주요 관광지를 다 돌아보고 오후 늦게 버스를 타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제부터 날씨가 덥다. 그리고 오후 서울행 고속도로가 정체될 것 같은 생각에 아내와 일정을 바꾸기로 하고 터미널로 향했다.
오전 9시 중앙고속버스. 나는 아내와 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관령 길가의 적송이 바닷가의 해송보다 늠름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역시 솔향강릉이었다. 아카시아도 눈부시게 초여름 풍경의 배경이 되어 주었다. 버스는 평창을 지나 횡성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아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원두커피를 두 잔 주문한다. 시간의 흔적을 남기기 위하여 사진을 또 찍는다. 잠시 아내는 아름다운 여자, 내게 영원한 반려자, 세상에서 내게 가장 기쁨이 되어주는 사람, 내 아내를 영원히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제자들 덕분에 멀리 강릉까지 다녀오는 뜻밖의 여행. 즐거움의 여정이었다. 제자들이 세상 곳곳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더욱 성장하기를 기원해 본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여서 더욱 좋았던 계획에 없던 여행. 내가 선생을 직업으로 선택했다는 것이 참 잘 했다는 생각 가득한 여행이었다.
(2011.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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