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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아이오와에서의 한 여름

by 광적 2008. 2. 28.

 

아이오와에서의 한 여름

 

                                                                                            -미국연수기(아이오와 주립대학교 외)

 

1996. 7. 21(일)

      아침에 눈을 떴다. 막바지 장마비가 아직은 미련이 남았다는 듯, 아파트의 베란다를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다. 지난 4월 10일 교육부에서 선발하는 과학교사 해외연수 시험을 본지 석 달이 지났다. 드디어 오늘, 미국 중부의 초원의 땅 아이오와주로 향하는 날이다. 밤잠을 설치고 설렘을 가득 안고 김포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에 도착하니 동행할 연수단 일행이 보인다. 미국에서 사용할 미화와 여행자 수표로 환전하고, 전화카드를 샀다. 가족들과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고 출국대로 향한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17시30분 드디어 활주로를 이륙한 KAL KE07471기가 지구의 동쪽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고도 일천 백m, 시속 710km으로 성층권 하부를 통과하고 있다. 기층이 불안정한지 기체가 심하게 흔들린다. 1시간쯤 후 일본의 후지산 상공을 통과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구름바다를 내려다본다. 회색무늬 방사상의 골짜기를 따라 흰눈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 솜사탕처럼 피어오르는 모루구름의 모습은 마치 종유석이 거꾸로 솟아오르는 모습인 석순 같기도 하고, 하얀 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캄캄한 밤하늘의 태평양 상공을 나는 비행기는 가끔씩 흔들린다. 그리고 폭포가 쏟아내는 물소리를 내며, 끝없는 물의 나라 태평양을 횡단하고 있었다. 바로 밤의 세계로 들어간 하늘의 여정! 신문을 뒤적이다가 자다가 깼다가를 반복했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창 밖을 내다본다. 어느덧 태평양을 건넌 비행기는 아메리카대륙의 등줄기 로키산맥을 넘고 있었다. 곧, 미국의 중앙 대평원 벌판이 초록색 바다처럼 넓게, 넓게 내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가도, 가도 끝없는 평원이 바둑판을 연이어 놓은 것처럼 광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서울에서 출발한지 12시간 반쯤 지나 시카고 공항에 내린다. 이것이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디딘 것처럼 미국 땅에 발자국을 찍는 것이었다. 여기가 세계 최강국이라는 아메리카합중국, 그들이 말하는 자칭 Super USA 미국의 땅이었다.

    공항 출구에는 아이오와 대학에서 보낸 버스가 와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미국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제는 다시 서쪽으로 달린다. 가도, 가도 산은 보이지 않는다.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 차창 밖에서 밀려오는 시원하게 뚫린 Free Way, 그것은 내 가슴을 뻥 뚫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자동차들의 절반 이상은 한 낮인데도 불구하고 전조등을 켠 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5시간쯤 버스를 타고 우리들의 목적지 아이오와에 도착하였다. 그 곳 시간으로 7월 21일 자정쯤 된 심야였다.

    Iowa State, Johnson County, CORALVILLE City. 벅찬 가슴으로 장장 17시간 동안 지구 반 바퀴의 하늘을 날고, 또 평원을 달린 꿈의 여정이었다.

 

7. 22(월)

    Hertland Inn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었다. 아침엔 Inn에서 빵과 과일이 나왔다. 간단히 이것들로 요기한 후 산책을 하였다. 그 날 아침 나는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미국산 여름햇살을 눈시리게 받고 있었다. 중고 자동차대리점이 첫눈에 들어온다. Ford, Chivolette, Toyota, SAAB, Nissan 등이 내 눈을 자극한다. 그리고 한쪽에 우리의 눈에 익은 한국의 HYUNDAE가 눈에 들어온다.

    아침에 일행과 함께 한국에는 아직 없는 할인점의 대표주자 Wall Mart엘 들렀다. 넓은 매장에는 각국의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벽마다 Low Price를 외치면서. Chinese Garden에 가서 Buffet로 점심식사를 했다.

    오후에는 아이오와주립대학(The University of Iowa)에 가서 4주 동안의 연수에 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그리고 대학 근처에 있는 공룡 전시장을 관람하였다. 대부분 몽고, 러시아에서 태평양을 건너온 중생대 지구를 지배해 온 파충류들이었다.

    처음 보는 거리의 풍경은 사람들이 교통질서를 잘 안 지키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지도 않는다. 서로 먼저 가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 대씩 교행하면서 서로 양보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Inn의 뒤편으로 난 철길로는 기관차 5량이 화물차 82량을 끌고 늙은 코브라 뱀처럼 지루한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계획에는 7월 22일부터 본 연수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같이 연수를 받아야할 팀인 물리과 연수단이 비행기 표 문제로 하루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은 뜻하지 않은 휴일이 되었다. 내일부터 연수가 시작된다. 미국에서의 정식 첫날밤이다. 오늘밤은 버터 먹는 꿈을 영어로 꾸려나!

 

7. 23(화)

   아침 06시에 기상하여 고국에서 정성스럽게 차려주던 아내의 손맛을 생각하면서 Inn에서 제공되는 토스트, 바나나, 사과, 오렌지 주스로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룸메이트인 정재섭 선생님과 아이오와 강변을 따라 달린다. 강변에 보이는 아름드리 나무들,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달개비 꽃, 그리고 흙탕물인 채로 흐르는 강물이 미국의 새 아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워크맨을 들으며 뛰는 아가씨, 웃옷을 벗고 조깅하는 청년들, 천천히 걷는 회색머리 할머니…. 모두 웃으며 아침 인사를 한다. 'Good morning, Hi…' 도로변의 아름드리 나무 속의 집들은 마치 별장처럼 보인다. 그리고 코스모스, 수국, 나리꽃 등 눈에 익은 꽃들이 나를 반겨준다. 강변의 조깅 코스 주변의 넓은 잔디들은 마치 이발한 것처럼 잘 정리되어 있었다.

   길가에는 아이오와 150주년을 축하하는 간판(Iowa 150, Johnson County, CORALVILLE)이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CORALVILLE은 아이오와 강변과 이 지역을 이루는 퇴적암층에 산호(Coral)가 무더기로 나오기 때문에 붙여진 마을(VILLAGE)이름으로 보인다.

   마침, 미국에서는 '96하계 애틀란타 올림픽이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올림픽에 대한 뉴스는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메이저리그 야구, 아메리카풋볼, NBA 농구에 관한 스포츠뉴스가 TV화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항상 밝은 얼굴로 눈웃음짓는 있었고, 'Excuse me, Thank you'를 말의 후렴처럼 붙이며 살고 있었다. 도시의 길가에서 보이는 야생토끼들의 뛰노는 모습이 마치 깊은 산 속을 연상케 했다.

 

7. 24(수)

   습관처럼 기상하자마자 아이오와 강변을 바람을 가르며 뛴다. 그래도 고국에서처럼 아침 일정이 빠듯하지 않아서 좋다.

   Chinese Restaurant 옌칭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음식 맛이 마땅치 않아 Red pepper sauce를 주문하여 넣어 먹었다. 저녁때는 시내 중심가를 돌며, 거리의 사람들과 만난다. 공짜로 영어 실습을 한다. 그 장소는 옷가게, 책방, 꽃집, 영화관 앞…등 발길이 닿는 곳을 따라 다녔다. 운동구점에 들어가 테니스 라켓을 사려고 두리번거렸으나 마땅한 것이 없었다.

   밤 10시를 넘어서 시내버스를 타고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운전기사 아줌마에게 환화 지폐 1000원 짜리를 건넸다. 그러나 그녀는 큰돈인 줄 알았는지 안 받으려 한다. 나는 그녀에게 미화로 1달러 정도의 돈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때서야 그녀는 고맙다며 기념으로 받겠다며 인사를 한다.

   여관이 있는 CORALVILLE에 와서 Charlies라는 Grill에 갔다. 마침 내 옆에 금발의 늘씬한 미녀가 동석한다. 그녀의 이름은 Jullia. 갈색 눈망울이 시원스런 아가씨의 산뜻한 서비스를 받으며 Budweiser맥주를 병째 마신다. 얘기를 나눠보니 줄리아는 아이오와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학비를 벌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는 것이란다. 예쁜 미국 아가씨의 시중을 받으며 마시는 술맛이 Very Good, Bon Bon!

   얼큰한 얼굴로 새벽 1시쯤 여관으로 들어오자마자 깊은 잠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7. 25(목)

   아침 06: 20분에 기상하여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아아오와 강변의 바람을 갈랐다. 새로운 세계에서는 잠자는 것조차도 아까웠다. 점심식사는 통역을 맡은 김이경씨, 후배인 유재헌, 박선엽선생과 함께 Mexican Food Fjtaka라는 음식을 시켰다. 양념한 고기와 채소를 익혀서 호떡 같은 것에 싸서 먹는다. 먹는 방법이 우리나라에서 호박잎이나 상추로 쌈을 싸서 먹는 것과 비슷하였다.

   오늘은 중국인 교수 張幼寬으로부터 Hydrogeology과목 강의를 듣는다. 일반적으로 지하수면은 해수면보다 높다. 만일 물의 순환이 없다면 지하수면과 해수면이 동일하다. 강수에 의해서 물이 공급되므로 지하수면이 높다는 등등….

   중국인 교수와의 대화 도중 한국과 중국의 여러 가지 공통점, 역사 등을 얘기한다. 그가 교수지만, 한국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부러워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우리 연수단 중에 자동차가 있는 사람의 숫자를 물어보았을 때, 전부 있다고 하니까 눈을 크게 뜨고 놀라기도 하였다. 장 교수는 한국이 데모를 많이 하는 사회가 상당히 불안정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저녁때는 어제처럼 Iowa시 다운타운을 누빈다. 식사는 중국식당인 옌칭(延京)에서 Vegetable Deluxe를 시켜 먹었다. 기름기가 워낙 많아 Red pepper sauce에 비벼서 먹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거의 첫 경험인 세상, 꿈을 꾸는 것처럼 착각이 되기도 한다. 저녁식사 후 심심한 마음을 가지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유선생과 Dancer들이 많다는 곳을 찾아 Coralville을 누볐다. 그러나 길거리만 헤맸다. 그냥 가기 섭섭한 발걸음, 다시 어제 들렀던 Charlies에 들러 맥주를 1pitch 시켜 마셨다. 오늘은 아름다운 Jullia의 서비스를 기대하고 갔다. 그렇지만 오늘은 Shelly라는 아가씨가 우리 테이블에 앉아 시중을 들었다. Inn에 들어오니 20:00 쯤 되어 있었다.

 

7. 26(금)

   06:00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월마트 방향으로 조깅을 하였다. 길가에 나와 풀을 뜯는 토끼를 손으로 잡으려고 살금살금 걸었다. 그러나 철망 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들은 야생토끼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철망 밑으로 통로를 만들어 놓아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깅 도중 중국인으로 보이는 초로의 할머니도 만났다. 노인은 이 길이 조깅 코스로는 안 좋다고 하였다. 여관에서 샤워를 하고 08:00 아이오와 대학으로 가기 위해 밴에 올라탄다. 운전기사는 서울대 천문학과의 최승언교수이다.

   오늘도 중국인 장유관 교수로부터 Hydrogeology 강의를 듣고 Computer 실습을 하였다. 주로 지하수(Ground Water)의 문제를 다루는 생소한 학문이다. 우리나라도 이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양성하여 지하수 공급문제, 지하수 오염문제 등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점심은 간단히 빵으로 때우고 레스토랑 연경에 가보았다. 우리 일행들이 거기에 있었다. 저녁은 아이오와의 한국인 침례교회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어주어 모처럼 한식을 실컷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992년 세웠다는 교회로 주로 한국인, 그리고 일본인, 중국인 그 밖의 사람들이 예배를 본다고 한다. 이국 땅에서 고생하는 한국인들에게 포근한 안식처가 되는 느낌이었다. 내일부터는 기다리던 첫 번째 주말 투어가 시작된다. 일행이 렌트한 미국 세단을 몰아보니, 물처럼 주르르 미끄러지는 기분이었다.

 

7. 27(토)

   포드 브랜드를 붙이고 있는 렌트카 Tarus를 이용하여 아이오와의 북쪽에 있는 미네소타주 방향으로 달린다. 가는 도중 Rockford Fossil Park에 차를 멈춘다. 이곳은 고생대 데본기의 화석산지이다. 노두를 관찰하고, 많은 조개화석을 확인하였다. 미국에는 큰 마을마다 공원이 있고 거기에는 바비큐시설, 전기, 펌프 시설이 되어있었다. 장거리 여행을 하는 도중 고기와 채소, 그리고 숯만 준비되면 언제든지 식사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좋았다.

   Waterloo를 지나 미시시피 강변에 있는 조그만 석회동굴 Crystal Cave를 답사하였다. 최근에 발견된 동굴로서 종유석의 보존 상태가 대단히 좋았다. 오후 6시가 관람 마감 시간이었는데 우리 일생이 6시가 다 되어서 이곳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멀리 한국에서 온 교사 해외연수 팀으로서 다시 언제 이곳에 올 수 있겠느냐고 떼를 쓰다시피 부탁을 하였다. 동굴을 안내하는 배불뚝이 노인은 진지하게 동굴의 생성유래, 특징 등을 설명하였다. 그물 속에 매달린 조그만 우유빛 종유석들이 마치 어미동물의 배에 젖꼭지가 수없이 달려있는 것과 같았다.

   동굴을 관람하고 Dubuque를 지나 미시시피강변을 따라 남쪽으로 달린다.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 콩밭… 이들은 이것들로 다 무엇을 하는가. 우리나라도 많은 양의 옥수수와 콩을 이 나라로부터 수입하는 농산물 수입국가가 아닌가!

   돌아오는 길에 Clinton근처의 Racing Car 경기장의 모습, 다양하게 치장한 여러 대의 자동차들이 굉음을 울리며 전조등을 밝히고 치타처럼 달린다. 어떤 차는 운전을 잘못하여 뒤집히고, 사고가 났다. 관중들은 자기들이 돈을 건 자동차가 승리하라고 아우성이다. 그 옆에는 가족 단위로 둘러앉아서 음식을 먹고, 얘기꽃을 피운다. 그곳엔 마치 우리나라의 서울랜드에서 볼 수 있는 놀이시설들이 즐비하다. 자유분방한 나라, 여유가 있는 나라, 이 나라가 미국이던가! 코랄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심야였다. 잠자리에 눕자마자 꿈나라를 또 여행한다.

 

7. 28(일)

   06:30에 기상하여 오늘은 218번 Free way를 타고 아이오와주 남쪽의 Missouri주 방향으로 향한다. 아이오와주는 미국의 중앙 대평원 지역이므로 어느 쪽으로 가도 역시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바다와 같은 평원이다. 미주리주의 동쪽 미시시피강변의 Hannibal에 있는 Mark Twain Cave엘 들렀다. 웅장한 동굴이었지만 석회암으로 된 종유석은 별로 없었다. 굴 입구의 마크트웨인(1835∼1910)의 동상이 우뚝 서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크트웨인은 플로리다에서 태어나 이곳, 미주리주의 한니발에서 소년시절을 보낸 소설가이다. 마크트웨인이란 미시시피강에서 깊이를 재는 단위였다고 한다. 저 유명한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핀의 모험의 저자가 바로 마크트웨인이다.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미시시피강, 말없이 유유히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흐르고 있다.

   차를 계속 남쪽으로 몰아 St. Louis에 도착하였다. St Louis park에 도착하여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미국인들을 본다. 공원의 한쪽에서는 배구를 하고, 한쪽에서는 음식을 구워먹고, 또 한쪽에서는 무엇이 그렇게 재미 난지 얘기의 꽃을 피우고 있었고, 그 옆엔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어 논다.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면서 벽을 보았더니, 역시 이 사람들도 우리나라의 공중화장실처럼 낙서를 해 놓고 있었다.

   세인트루이스 공원을 산책 중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뛰어가서 보니 그것은 한국전쟁 참전 기념탑이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만든 해시계 모양을 본 따 제작된 탑이었다. 이국 땅에서 한국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또 다른 감격이었다. Jerferson Memorial 앞에서는 금발의 미녀와 어깨동무를 하고 멋진 사진도 찍었다.

   시내로 가면서 세인트루이스를 상징하는 웅장한 게이트웨이 아취가 고개를 뒤로 젖힐 정도로 높게, 높게 나에게 다가왔다. 세인트루이스를 통과하는 미시시피강변의 모습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미시시피강 다리, 유람선 위의 Casino, 음식점, 시내의 은은한 자태를 뽐내는 건물들이 석양빛과 어우러져 내 눈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미시시피강변에서 그곳에 사는 검둥이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손을 잡으며 잠시 인류애를 느껴본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시내에서 아이오와로 가는 61번 Free Way를 찾는다. 마침 경찰을 만나 안내해 달라고 하였다. 그들은 "Follow me"하며, 앞에서 직접 에스코트를 해 주었다. 20:00쯤 세인트루이스를 출발하여 다시 북쪽 아이오와를 향해 달린다. 어둠을 뚫으며 심야의 Free way를 달리고 또 달린다. 가로등도 없다. 오가는 차도 거의 없다. 일방 통행로의 중앙 차선을 타고 독일의 아우토반처럼 질주한다. 오는 도중 밖으로 눈을 돌리니 우리 차가 미시시피강의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낌새가 이상하여 차를 잠시 세우고 지나가는 젊은 청년한테 물어보았다. 우리가 Exit를 잘못 빠져 나와 Illinoi주의 Quincy라는 곳에 와 있는 것이었다. 차를 몰아 길 안내를 받으려고 어느 Inn에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여관 주인에게 하는 말. 'Excuse me, May I help you?' 상대방 아줌마가 이상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우리에게 해야 될 말인데…. 나중에 보니 Quincy라는 곳은 미시시피강을 건너 바로 미주리주의 초입이었다. 아이오와로 오는 도중 어느 휴게소에서 1달러짜리와 2달러짜리 복권을 샀다. 1¢짜리 동전으로 긁어보니 1달러 짜리 복권이 당첨되어 10달러를 따기도 하였다. 심야에 차를 몰고 몰아 코랄빌의 Hertland Inn에 도착한 것은 다음 날 새벽 2시 20분이었다. 우리 김종화 단장님은 걱정이 되어 잠도 못 자고 그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7. 29(월)

오전 Pappajohn Building에서 미국 중학생들의 수업 모습 비디오를 시청하였다. STS(Science Technology & Society)를 적용하는 현대적인 수업방법이었다. 오후에는 Web Internet 사용 실습을 하였다. 저녁은 City Park에서 지구과학과 Dinner Party가 있어서 스테이크에 소스를 바르고 상추쌈을 싸서 푸짐하게 입맛을 즐겼다.

 

7. 30(화)

오늘부터는 미국의 중·고등학교를 방문하는 날이다.

우리 팀은 Hertland Inn에서 10:00에 출발하여 서쪽으로 달려서 13:00쯤 Iowa State의 수도인 Des Moins에 도착하였다. Super 8 Motel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Johnstone High School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Dennis Briggs 등 3명의 교사들로부터 Physical properties of minerals로 이름 붙여진 과학수업의 방법을 들었다. 방학 중이라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과학실에 들어가 여러 가지 실험기구와 교재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수업방법에 대한 토론을 하였다.

오후엔 Iowa 기상관측소(The National Weather Service Facility in Johnstone)를 견학하였다. 이 관측소는 미국 내 1,200개의 기상관측소 중의 하나로 25명이 하루 3교대씩 근무한다. 1년에 40개정도 발생하는 Tornado를 예보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이 관측소의 임무라고 한다.

Des Moins의 Chongs라는 한국 음식점에서 갈비탕으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서부영화의 영원한 배우 존 웨인의 생가엘 들렀다. 하얀 목조 건물로 된 아담한 집이었다. 일행과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어서 1883년도에 건립된 다리인 영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겸 주연을 하며 메릴스트립과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영화, Madison County의 다리에 나오는 Roseman Bridge를 저녁때쯤 찾아갔다 비포장 도로로 잘못 들어 우리가 헤매고 있을 때 미국인 시골 노인이 자기 차로 직접 가는 길을 알려주어 고맙게 길 안내를 받았다. 미국 시골의 인정이나 한국의 그것이나 비슷함을 느꼈다.

 

7. 31(수)

일찍 기상하여 Super 8 Motel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Des Moins의 역사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이 박물관에는 이 지역에서 주로 나오는 해백합 화석들, 과거 이 지역 사람들이 광산 노동을 하며 고생하던 모습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두 번째 안내자인 시각장애 할머니의 친절한 안내가 가슴을 찡하게 했다.

데모인 도서실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데모인의 상수도 시설을 방문하였다. 안내원이 내부시설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성의를 다하여 설명해 주었다. 미국의 로키산맥지역은 주로 석회암 지역으로 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의 대부분의 땅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직접 먹을 수 없는 나라이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는 생수니 약수니 하는 말이 따로 있을 수 없었다.

데모인 교육청을 방문하였다. 해양생물관의 경우 여자 박사가 근무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족관에서 물고기에게 먹이도 주고, 어항 속의 물의 상태도 조사한다. 거북이와 물고기 등을 해부하고, 실물 현미경을 가지고 어류의 외부모습을 관찰하고 진지하게 탐구하기도 한다. 아이오와주의 학생들은 방학 중 시간을 내어 특별활동으로 컴퓨터, 스포츠, 박물관, 수족관… 등을 자신이 선택하여 찾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탐구활동, 탐사활동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15:00 쯤 모텔에 와서 한숨 자고 저녁식사를 하려 간다. 그곳은 Stella's Blue sky Dinner라는 곳이었다. 분위기가 미국적인 자유분방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곳이었다. 종업원들이 밝게 웃으며, 세련된 디자인의 복장으로, 재빠르게 움직이며 서비스를 한다. 주로 가족 단위로 식사하러 온 이들의 모습은 상당히 정다워 보였다. 음악에 맞춰 어깨춤을 추는 모습, 머리 위에다 컵을 대고 종업원 아가씨가 높은 곳에서 쉐이크 아이스크림을 쏟는 모습은 재미있었다. 잘못하면 얼굴에 떨어질 수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바닥에 누워서 이마에다 컵을 대고, 아가씨는 의자 위에 올라가서 아이스크림을 붓는다. 아이스크림을 잘못 조종하여 얼굴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그 자체로 즐거워서 웃고 또 웃는다. 낙천적으로 세상을 즐기는, 그리고 밝게 웃으며 살아가는 모습들, 일만이 최고인 줄 아는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부분들이다. 어차피 인생은 한번 왔다갈 것,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고…

 

96.8.1(목)

06:30에 기상하여 강변을 따라 아침 산책을 간단히 했다. 그리고 09:00에 Pioneer Hybrid Inc에 도착하였다. 이 회사는 주로 옥수수의 품종을 개발하고, 병충해에 관하여 연구하는 회사이다. 직접 옥수수 농장에 나가 푸르른 들판을 바라보면서 뙤약볕에 몸을 데우며 땀을 흘리면서 설명을 들었다.

점심식사는 Chinese Cafe에 가서 Chicken needle을 먹었다. 식사 후 Johnstone High school에 가서 Colleen Anderson선생의 "Geology Curriculum Activity"에 의한 수업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작달막한 키의 Mike Blair선생의 안내를 받아 데모인에서 가장 대표적인 노두를 탐사하였다. 이곳은 고생대 데본기의 조개류, 어류화석이 많이 나오는 곳이다. 따가운 햇빛에 온몸이 타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탐사하였다. 연흔, 사층리 등의 퇴적구조, 단층과 같은 지질구조 등이 눈에 띈다. 저녁식사는 근처의 Park라는 음식점에서 양식으로 하였다. 주방장이 Johnstone High School출신으로 오늘 참석한 교사들의 제자라고 한다. 우리만이 느끼는 줄 알았던 사제간의 정이 이곳에서도 돈독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식사 후 Best Buy라는 전자제품 판매점을 쇼핑하였다. 그리고 Drake University의 Municipal Obervatory에서 천체관측을 하였다. 1920년에 세워진 천문대로서 중앙 돔의 망원경은 100년 된 것이라고 한다. 이 천문대의 사정상 중앙 돔을 열지 못하고 다른 반사 망원경으로 목성을 관측하였다. 대적반, 3개의 위성이 관측되었고, 육안으로는 큰 곰, 백조, 거문고, 독수리, 목동, 처녀, 사수, 전갈, 헤르클레스 자리가 태평양을 건너온 것처럼 반갑게 눈에 들어왔다. 2억 만리 이국땅에서 본 여름하늘의 모습은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 천문대는 Drake 대학과 데모인시가 공동으로 운영하며 매주 시민들을 위한 천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했다. 배가 불룩 나온 천문대 책임자가 숨을 헐떡이며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일은 다시 Iowa로 다시 가서 강의를 받고, 이어서 New York으로 주말여행을 떠날 스케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8.2(금)

Johnstone High School에 가서 마지막으로 Internet 실습을 하였다. 그리고 Iowa로 향한다. 오는 길에 Mcdonald에 가서 패스트푸드로 점심식사를 하고, 유명의류의 가격 파괴점이라는 Outlet에 차를 세웠다. 이것저것 물건을 구경하다가 '고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 아들들이 좋아할까' 상상하면서 남인이, 남규 청바지 Lee를 한 벌씩 샀다. 며칠만에 그리운 Iowa에 다시 돌아왔다. 마치 고향에 다시 돌아온 것처럼 푸근한 느낌이다. Hertland Inn에 도착하여 다시 방 배정을 받고 아이오와 대학에 가서 조정일 교수와 함께 학교 방문 성과를 반성했다. STS의 성과에 대한 반성으로 "Less is More".

저녁때가 되어 두 번째 주말 투어가 시작된다. 아이오와 주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박도영씨가 밴으로 Cedar Rapids까지 데려다 준다. 18:50 비행기로 시카고로 향한다. United Airlines를 타고서. 석양빛에 어우러진 구름, 그 아래의 끝없는 벌판. 시카고에서 다시 20:50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향하고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시카고의 모습은 바다를 끼고 있는 것 같았다. 오대호 중의 하나인 Michigan Lake이다. 동쪽으로 향하니, 바로 밤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지상의 세계는 반딧불이가 떼로 날아다니는 것처럼 불빛만 여기저기 보일 뿐이었다. 거기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거나 도시인 것이었다. 23:15에 드디어 뉴욕에 도착하여 한국인인 경영하는 맨하탄 인에 여장을 풀었다. 배가 출출한 탓에 저녁식사를 후딱 해치웠다.

 

8.3(토)

맨하탄 Inn에서 빵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였다. 10:00쯤 강서회관이라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음식점 앞에서 맨하탄을 일주하는 버스투어를 시작했다. Sky Liner이라고 하는 버스를 타고 백 수십 미터의 빌딩의 숲 속을 헤집고 다닌다.

뉴욕은 1년에 7,500만명이 들어오는 세계 제1의 도시이다. 맨하탄의 르 휘가로 카페는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쓰여진 곳이고, 소호 빌리지 지역은 영화배우 더스틴 호프만과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활동했던 곳이며, 데이비 무어의 사랑과 영혼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였다. 뉴욕에서는 화랑가의 그림 수입으로 연간 65억불을 벌어들인다고 한다. 맨하탄은 네덜란드인이 이곳에 맨 먼저 도착하여 1626년에 인디언에게 24$의 장신구를 주고 샀다고 한다. 그래서 맨하탄은 "뉴 네덜란드"라는 뜻이라고 한다. 뉴욕 맨하탄의 차이나타운은 세계에서 가장 큰 해외 중국인 거주 지역이라고 한다.

뉴욕은 1년 관광수입이 100억불 정도로 해외 지점 은행이 400여 개, 증권회사 700여 개가 있다. Wall Street는 인디언들을 못 들어오게 벽을 쌓았다가 허물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기증한 것으로서 키는 91m이며, 14개의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1776년 7월 4일 독립기념일로 하고 있는 이 날은 미국 3대 대통령 Thomas Jeferson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은 실제 1783년에 독립하였다고 한다. 허드슨강의 Brookly Bridge는 100년 전에 건립되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날씨가 흐려서 볼 수 없었다.  부루클리강 다리는 뉴욕의 3대 명물이다. Empire State Building에 오른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자 아이가 굳 모닝하며 인사를 먼저 한다. 나도 반갑게 눈을 맞추며 인사를 했다. 1931년에 완공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높이가 381m, 102층이며 전망대는 86층에 자리잡고 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세워진 이 빌딩은 1년 반만에 완공된 건물로 기초 자체가 기반암이 화강암으로 되어서 기초가 튼튼하고, 폭풍, 지진 등 자연재해로부터 대단히 안정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한때 우리나리의 문선명씨가 사려고 했었다는 이 건물은 외국인에게는 절대 팔지 않는다고 한다.

巨富 록펠러가 사서 기증했다는 U.N. Building을 방문하였다. 1996년 현재 181개국이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국제기구로서 지금은 남북한이 동시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유엔 가입 기념 선물로 훈민정음 원본을 기증하였으며, 이는 현재 유엔사무국에 보관되고 있다. 유엔빌딩 앞에서 마치 UN대사라도 된 기분으로 특별히 기념촬영을 하였다.

이어서 버스를 타고 Halem가를 들렀다. 일하기가 싫어 빈둥거리는 흑인들이 거주하는 이곳. 집세를 내지 못 해 많은 집들이 폐쇄되어 있었다. 기존의 사람들은 새로운 곳으로 집을 짓고 이사를 가서 그야말로 거지들이 사는 동네로 변해 있었다. 뉴욕 범죄의 95%가 여기에서 발생한다고 하니, 이곳이 어떤 곳이겠는가.

 

8.4(일)

아침에 일어나 택시에 올라탄다. 운전기사의 안내를 받아 Metropolitan Musium으로 향했다. 세계 각국의 유물들이 전부 여기에 모여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중학교 때 영어책 "Tom and Judy"라는 교과서에서 처음 본 유명한 Centeral Park에 당도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조깅을 한다. 혼자서 또는 둘씩 자전거를 탄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잔디밭에서 반라의 모습으로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호수에서 개가 헤엄치는 신기한 모습도 보였다. 나는 코브라 뱀을 가진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아줌마에게 입맞춤을 당하였다.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 전원적인 모습이었다. 이어서 국립과학박물관을 방문하여 주로 공룡화석을 보았다. 그리고 Planertrium을 관람하였다.

이제 다시 아이오와로 되돌아 가야할 시간이 다가온다. 뉴욕시간으로 18:00에 택시를 타고 La Guadia 공항으로 향했다. 시카고로 날아가서 이곳 시간으로 18:45 비행기를 타고 22:00에 Cedar Rapids 공항에 도착하였다. 여기에서 나이아가라 폭포 쪽으로 주말투어를 떠났던 팀과 합류하기로 하였으나 만나지 못하고 23:00쯤 코랄빌로 돌아왔다.

 

8.5(월)

오늘은 Robert Camichal 교수로부터 Geophysics강의를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동아프리카 지구대가 Failed Rift Zone라는 것이다. Camichal교수는 아직도 88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 패널, 그리고 모자를 가지고 자랑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1970년대에 찍은 사진들도 가지고 있었다. 한국사람으로부터 선물 받은 인삼차를 직접 끓여 주시는 교수님의 정을 느껴본다. 점심식사는 옌칭 본점으로 가서 먹었다. 교수님께서는 점심 값으로 20불을 직접 내셨다. 한국의 정이 많은 교수님을 닮은 다정다감한 미국인 교수님이었다.

 

8.6(화)

06:30 기상하여 오랜만에 아이오와 강변을 따라 가볍게 조깅을 했다. 더워서 다른 사람들처럼 웃통을 벗고 뛴다. 온몸을 스치는 아침바람이 상쾌한 기분을 만든다. 만나는 사람마다 'Good Morning, Hi' 나도 마찬가지로 'Good Morning, Hi'대답한다. 한번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지나가는 사람한테 '굶었니?' 했다. 그랬더니, 밥을 먹었는지 아무 대답도 없었다. 아마 한국사람들이라면, 'Good morning과 굶었니'를 구별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오늘은 Robert Brenner 교수의 Sedimentary Rock에 대한 강의를 받았다. 어제는 더워서 반바지를 입고 갔더니, 오히려 강의실이 추워서 고생을 했다. 저녁은 Kent Park로 가서 8월이 생월인 김종화 단장님과 김승훈 선생의 생일 잔치 겸 파티를 하였다. 마침 이종태 선생님 사모님이 필라델피아에서 와서 갈비 잰 것을 구워 주어 푸짐하게 배를 불렸다. 사모님은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 남편과 떨어져 아이들과 필라델피아에 거주한다고 한다. 한국적인 비극인가, 희극인가. 아! 기러기 아빠.

이슥한 밤이 되어 후배 유 선생과 Doll's Inc엘 갔다. 미국 댄서들의 쭉쭉 빠진 몸매로 춤을 추는 곳이었다. 중앙무대에서 춤추는 무희가 있고, 다른 무희들은 손님들 앞에 와서 엉덩이춤을 추기도 했다. 이들에게 주는 팁은 한번에 1$씩이다. 그녀들은 아슬아슬한 패션으로 남자들을 유혹하며 팁을 챙겨 넣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눈으로만 볼 수 있지, 절대 "No Touch"였다.

 

8.7(수)

Gorge McCormick 교수의 Gemstone & Mineral 과목을 가지고 들어왔다. 오전은 강의, 오후는 실습이었다.

아이오와주립대학은 세계적인 지구물리학자인 Van Allen이라는 교수가 재직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구 주위를 2중 도넛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강한 방사능대인 밴 앨런대를 발견한 분. 그러나 Allen 교수님은 이제 70세가 훨씬 넘은 연로한 분으로 1주일에 한번 정도 출근하신다고 한다. 후배 유선생과 Allen교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몇 번을 교수님 연구실을 노크하였다. 그러나 그 때마다 출근을 안 하시어, 아쉽게도 뵙지 못 하고 말았다.

저녁식사 후에는 Evening Special Lecture로 Van Allen의 제자인 Donald Gurnett의 Project Galileo Mission to Jupiter의 강의를 받았다. 그리고 20:00∼21:00까지는 Iowa대학의 천문대에서 천문관측이 실시되었다. 돔이 2개로서 모든 관측이 컴퓨터로 통제되고 있었으며, 전파망원경까지 갖춘 첨단의 관측시설이었다. 주로 내가 대학원 시절 논문을 썼던 CCD를 이용한 관측이었다. 저녁 때 Inn에 와보니 TV 옆에 10$이 있었다. 아침에 1$을 놓는다는 것이 10$을 놓고 간 것이었다. 청소 아줌마는 이것이 너무 큰돈이라고 안 가져간 것이었다. 나는 로비에 얘기하여 아침에 청소한 사람에게 1불을 전해 주도록 하였다.

 

8.8(목)

Donald Gurnett교수의 Magnetospheric physics 강의를 받았다. 지구 자기권, 반 알렌대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 오후에는 컴퓨터실에서 Plate tectonics CD롬을 작동해 보았다.

저녁때는 K-mart에 가서 선물로 쓸 계산기 40개, 탁상용 미니시계… 등을 167불을 주고 샀다. 저녁때는 대학동문들과 모여 안순호 선생 귀국 환송파티를 하였다. 나중에 비록 일주일 연기되었지만…

 

8.9(금)

오전 중 아이오와시 지역의 지질답사를 하였다. 이곳은 석회암 지역으로 주로 산호, 완족류 화석이 발견되었다. 더운 날씨에 등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아이오와시 일대를 탐사하였다. 점심은 City Park에서 바베큐로 먹었다.

오후에는 CORALVILLE Dam 지역의 Field Trip를 한다. 무수히 많은 Colonial coral, Horn coral들이 발견되었다. 이곳은 1957년에 댐이 만들어졌고, 1993년 대홍수로 인해 큰 범람이 있었다고 한다.

저녁에는 아이오와 강변을 산책하였다. 한국보다 훨씬 많은 반딧불들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미국은 금요일이 주말이라 그런지 벌써 낚시질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또 밤이지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조깅을 하는 사람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뜨거운 낮에 지질조사를 하느라 좀 지쳤다. 내일은 2박 3일 일정으로 Chicago Trip를 떠난다.

 

8. 10(토)

Chicago Trip first day

08:15 코랄빌을 출발한 버스를 타고 5시간쯤 동쪽으로 달려서 시카고의 Musium of Science & Industry에 도착하였다. 3층으로 된 이 박물관은 기초과학, 생물, 지구, 우주, 자동차, 항공과 관련된 전시물들이 잘 진열되어 있었다. 어린 학생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저녁식사는 한인거리의 반도회관에서 비빔밥을 먹고, 식비는 Tax, Tip을 합쳐서 9$50¢를 냈다. 20:30쯤 O'hare int'l Airport 근처의 Hawrd Johnson Hotel에 들어가 첫날의 여장을 풀었다. 여기는 아이오와의 Hertland Inn과는 다르게 아침식사가 무료로 제공되지 않는다고 했다.

 

8.11(일)

Chicago Trip second day

08:00 호텔을 출발하여 09:00 쯤 Field Musium에 도착하였다. 지질시대의 각종 화석, 아름다운 광물, 그리고 각 대륙의 복장, 생활용구, 그릇 등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신대륙개척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태평양관과 보석코너가 가장 인상적이었고, 화산과 싸우며 공존하는 그들의 모습은 엄숙하면서도 낭만적이었다. 보석코너에서는 Topaz의 주먹만한 결정이 가장 눈에 띄었다.

박물관 밖으로 나와 Michigan 호수의 주변을 따라 걷는다. 말로만 듣던, 지도에서만 보던 오대호. 그것은 호수가 아니고 망망대해의 모습이었다. 수평선이 날을 세우고 늘어섰고, 수많은 유람선, 모터보트가 둥둥 떠다니는 대양이었다. 호수를 따라 걷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연출하고 있었다. 복장은 반바지만 입고, 상의는 브래지어만 하고, 귀에는 워크맨을 꽂고, 긴 머리를 휘날리면서…

Planatrium을 보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Acquarium을 보았다. 자그마한 크기부터, 사람 키 만한 물고기들, 그리고 돌고래 쇼 등 한번 볼만한 수족관이었다. 저녁식사 전 1$ 쇼핑센터에 들러서 우리 학교 선생님들에게 전할 선물들을 샀다. 로션, 열쇠고리, 손수건… 저녁식사 후 그 유명한 Cears Tower엘 올라갔다. 한국어 안내 '안녕'이란 글자가 보인다.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110층 Tower에 엘리베이터가 치고 올라간다. 시카고시가 한눈에 보인다. 대도시 시카고 시가지가 다 내려다보이는 것 같았다. 빌딩의 숲 사이로 Y자 모양으로 시카고 강이 흐른다. 강변으로 쭉쭉 솟아 올라온 빌딩들, 그 도심의 강을 따라 유람선이 흐르고, 또 도시의 야경이 마치 별들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시카고의 밤거리를 마차를 타고 신나게 달렸다. 머리를 하늘로 향하기도 하고, 좌로, 우로 돌리며 지나가는 아가씨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손을 열심히 흔들며, 'Hi', 하고 소리를 지른다. 22시쯤 지구과학과 팀들과 합류하여 지하철을 타고 23:30쯤 O'hare Airport 역에 도착하여 Shuttle bus를 타고 24시가 넘어서 Haward Johnson Hotel에 들어왔다. 시카고의 지하철은 냄새가 나고, 우중충하고, 노선 갈아타기가 힘들고 서울의 지하철은 여기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8.12(월)

아침에 일어나 호텔 밖의 상큼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세계적인 공학 연구소인 Argone National Labortory로 향한다.

1.5km 둘레의 거대한 가속기가 위엄스럽게 다가왔다. 1년 예산만 1,000억원 이상이 든다고 하는 거대한 괴물. 다음 동에 가서는 초전도 실험모습을 보았다. 절연체인 세라믹이 -200℃ 이하의 액체 질소를 이용했을 때, 전도체가 되어 자석과 반발하는 모습이 신기하다. -200℃의 질소 속에 둥근 풍선을 넣었더니 쭈그러졌다가 다시 꺼내니 부풀어오르는 모습, 샤를의 법칙을 설명하는 그것도 흥미로웠다.

점심식사 후, 한국의 이휘소 박사가 근무하였다는 세계적인 원자력연구소, Fermi Lab에 도착하였다. 'H'자 모습의 거대한 본관 건물은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며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페르미 연구소의 가속기는 아르곤연구소의 것보다 더 웅장하였다. 4km 정도 되는 주위로는 강처럼 물이 흐르고, 일정한 거리 간격으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가열된 가속기를 냉각시키기 위하여 마치 강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본관 건물에는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는 거대한 푸코진자가 설치되어있었다. 그 밑에는 하얀 모래로 추의 움직임을 알 수 있도록 장치하였다.

페르미 연구소에도 한국인 연구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명문대학이라고 하는 서울대, 고려대 등도 이 연구소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정문 앞에는 태극기를 비롯한 20개 국가의 국기들이 펄럭이고 있었는데, 이 연구소와 협력관계가 있는 국가들이란다. 과학교재를 파는 상점을 거쳐서 시카고를 떠나 버스를 탔다. 다시 Iowa를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린다. 20:30 쯤 코랄빌에 도착하였다. 내일은 10:10부터 아이오와 주립대학에서 다시 강의를 받는다.

 

8.13(화)

며칠만에 아침에 다시 아이오와 강변을 따라 조깅하여 City Park까지 갔다. 강 건너엔 사슴들이 산에서 내려와 물을 먹고 있었다. 강에 피어나는 물안개가 흰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미국에서는 길조로 얘기하는 까마귀들도 아침 운동을 나와 있었다. '이런 장면들을 그대로 우리 고국에 가져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Jarnet  Robinson 선생으로부터 Nodule development Overview 강의를 듣는다.

강의 시간에는 프랑스의 Evian, 캐나다의 NAYA 생수를 마신다. 점심은 버거킹에서 햄버거 하나에 큰 컵의 콜라를 한잔으로 때운다. 아마 이번 한 달의 연수기간 중에 마신 콜라의 양이 그 동안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마신 그 양보다 더 많으리라. 저녁때는 버스를 타고 Wall-Mart에 가서 가방을 샀다. 그리고 탁상용 미니시계 20개, 넥타이 7개를 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물건의 카트에 넣고 와서 계산을 하던 중 계산대의 아가씨가 100$을 안 받았다고 해 실랑이를 벌이게 되었다. 내용인 즉, 내가 지불할 돈이 총 247$ 47¢가 나와 계산 도중 50$짜리 두 장을 내고 나머지 돈을 더 내고 있었다. 그런데 캐셔가 뜬금없이 100$을 안 받았다는 것이다. 난 순간적으로 당황하였다. 영어실력도 시원치 않은데… 그렇지만 차분하게 나는 분명히 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 아가씨는 분명히 안 받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국말 '미치겠네…'가 나온다. 그 아가씨가 물론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그 아가씨가 나에게 매니저를 불러도 되겠냐고 묻는다. 나는 일단 그렇게 하라고 했다. 잠시 후 건장한 청년 3명이 왔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전후 사정을 얘기하고 금고에 있는 돈과 오늘 영수증을 확인해 보라고 하였다. 만약에 그래도 돈의 액수가 맞으면 내가 100$을 내겠다고 하였다. 결국 그 아가씨는 울상이 되어 금고 속의 돈과 영수증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계산하는 것을 보니, 계산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돈이 금고 속으로 못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계산이 다 되어갈수록 '아하 100$이 날아가는구나'하면서 나는 카운터의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거의 계산이 끝나갈 무렵 매니저가 다른 사람 짐을 들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짐 속에서 50$짜리 두 장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캐셔도 한숨을 내 쉬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100$을 벌어드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런 것도 해외연수 중에 좋은 경험이라고 자위하면서 Inn으로 돌아왔다.

 

8.14(수)

오늘은 Module 개발을 하는 날이다. 모듈개발이란 수업할 주제를 가지고 순서도를 짜고 수업지도안을 짜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 조는 주제를 화석으로 정해 가지고 모듈을 만들었다. 점심은 IMU에서 부페로 채소를 곁들여서 먹었다. 오후에는 계속 module 개발이었다.

Evening Special Lecture는 Robert Brenner 교수가 'Energy Source in the 21st Century'라는 주제로 태양에너지, 핵에너지, 지열…에 대하여 강의하였다.

 

 

8.15(목)

오늘은 광복절 날이다. 미국으로 보면 2차 세계대전 전승 기념일이다. 고국에서는 여러 행사로 떠들썩하겠지만, 여기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곳이다.

오전에 module 개발. 오후에 발표이다. 지구과학과 4개조, 물리과 4개조씩 발표하였다.

저녁때는 유재헌선생과 Best Buy엘 걸어가서 부모님께 선물할 무선전화기, 코털깎이, 비디오 테이프 등을 사고, Inn에 들어와서 동문들끼리 양주를 반주로 해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내일은 아이오와 대학에서 4주간의 연수가 끝나는 날이다.

 

8. 16(금)

시간이 어느덧 흐르고 드디어 The University of Iowa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의 담당 지도교수였던 STS를 개발한 세계적인 과학교육학자 Robert Yager 교수의 고별강연이 있었다. 저녁때는 수료식이 거행되었다. 대학 총장, 주정부 관계자, 시의원 등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이 자리에서 4주간 과학교사 해외연수를 수료했다는 수료증을 받고 공식적인 행사의 끝을 맺었다.

4주간의 아이오와 주립대학에서의 교육부 파견 해외연수를 마치고 내일부터는 일주일 동안 미국의 로키산맥 일대의 서부를 누비는 Tour가 시작된다.

 

8.17(토)

일찍 일어나서 짐을 정리하고 05:10에 밴을 타고 정들었던 Iowa를 떠난다. Cedar Rapids에서 07:00 비행기를 타고 로키산맥 쪽으로 날아간다. Denver에 내려서 다시 09:00 비행기를 갈아타고, 10:30 쯤 대염호가 있는 Salt Lake City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엔 벌써 한인관광 안내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고려정이라는 한인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우리 지구과학과 일행은 35만$짜리 리무진을 타고 드디어 미국의 서부여행을 시작한다.

맨 처음 Utah주이다. 경기도와 자매결연을 맺은 유타주는 주민들의 80%가 몰몬교도라고 한다. 미국에 48번째로 편입된 주로서 Salt Lake City는 유타주의 수도이다. 영화 600만$의 사나이, 10계 등 서부영화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한국인은 6,000여명 정도가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점심식사를 한 후, 처음 방문한 곳이 세계 최대의 구리 광산인 Copper Mine이다. 1906년부터 채굴하기 시작하였으며 지금은 1,30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광산이다. 수요가 많아 1년 365일 쉬지 않고 가동된다고 한다. 하루에 32만 톤이 생산되는 이곳에서는 대형 포크레인이 한번에 70톤씩 퍼낸다고 한다. 이것을 대당 240톤 짜리 초대형 트럭으로 원광석을 실어 나른다. 바퀴가 사람 키에 몇 배인 거대한 트럭이다. 이곳은 준사막 지역으로 강수량은 389mm/년이고, 스프링쿨러로 물을 주어 격년제로 농작물을 재배한다고 한다. Copper Mine 정상의 고도는 2,300m이다. 가이드는 또, 미국은 석유의 매장량이 약 3,300억 배럴로서 대부분 알래스카, 남 캘리포니아 등에 매장되어 있다고 했다.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의 석회암층이 마치 흰눈처럼 보인다. 차창 밖에는 고국에서 자주 본 해바라기가 반갑게 우리 일행에게 목례를 하고 있었다.

다시 Idaho주까지 3시간 정도 걸려서 달려왔다. Lava Hot Springs라는 노천온천에서 온천욕을 했다. 아메리카 인디언이 경영하는 온천, 거기에서 그들과 함께 한여름의 태양 빛에 누워서, 같은 아시아계통의 인종으로서 무언의 동료의식을 느끼면서 뭐처럼 여유를 부려봤다.

저녁은 竹林園(Bamboo Chinese Restaurant)이라는 중국식당으로 가서 해결하였다.. 부페식으로 메뉴도 좋았고, 한국인 종업원이 만든 맛있는 김치가 구미를 자극하였다. 또한, 후식으로는 무등산 수박같은 미국 수박으로 온몸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유타와 아이다호주는 로키산맥의 Great Basin 지역으로 우리나라로 말하면 강원도에 비유될 것이다.

 

8.18(일)

06:15 기상, 07:10 어제 묵었던 Pocatello City를 출발하여 Yellow Stone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사막을 일구어 만든 끝없이 넓은 밭, 스프링쿨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태양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아침햇살과 어우러져 무지개 빛을 이룬다. 이곳은 로키산맥의 계곡을 막아 만년설이 녹은 물을 끌어들여 관개수로를 만들어 농업용수, 식수로 이용한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주로 농업이 주산업인데 농부들의 대부분은 농과대학을 나온 사람들로 비행기를 직접 조종하여 씨를 뿌리고, 농약을 살포하는 대규모 농업이라고 한다.

어제 밤에는 숙면을 취하지 못한 탓에, 머리 속이 맑지 못한 상태에서 창 밖을 보며 엘로우스톤공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길옆에는 폰테로사라고 하는 늘씬한 소나무들이 쭉쭉 뻗어 하늘 끝을 찌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화산지역이라 어느 정도 나무가 자라면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해 쓰러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쓰러진 나무들이 전장의 시체처럼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이곳은 1988년에는 대화재가 발생하여 3개월 간 공원지역을 검게 태웠다고 한다. 진화되지 못한 화재는 가을이 지나고 첫 눈이 오면서 꺼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상도만큼의 공원지역이 이 화재로 인하여 잿더미로 변해버린 옐로우스톤공원. 자연상태로 진화될 때까지 방치된 이곳. 이것이 다시 복원되는데는 약 150년이 걸린다고 한다.

들소의 일종인 버팔로, 큰 사슴의 일종인 엘크, 그리고 시조새 펠리컨이 사는 옐로스톤 국립공원. 화재가 나도 자연적으로 진화될 때까지 끄지 않는 이곳, 1년에 3∼4m 정도씩 폭설이 내리는 처녀림이 그득한 그곳, 1872년 3월 1일자로 그란트 대통령에 의해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이 옐로스톤 국립공원이다. 가는 도중 본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기븐폭포가 하얗게 물거품을 토해내고 있었다. 높이가 26m나 되는 이 폭포가 시원하게 쏟는 물줄기, 등에 닿지 않아도 어려서 등목하던 그 때보다 더욱 시원한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제일 먼저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Mammoth Hot Spring이었다. 이곳은 85∼90℃의 뜨거운 물을 하루에 20여 차례씩 분출한다. 그리고 Lower Geyser, Midway Geyser 등의 간헐천에선 주기적으로 지구의 에너지를 뜨거운 물로 분출한다. 이곳은 온천수가 분출될 때 섞여 나오는 황의 성분 때문에 노란 돌들이 많아 Yellow Stone이라고 붙여졌다고 한다. 15:53에 Old Faithful Geyser의 뜨거운 물줄기가 황홀하게 분출하였다. 이곳은 분수 물의 온도가 93℃인 세계적으로 유명한 간헐천이다. 75분에 한번씩 분출하는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벤치에 둘러앉아 카메라를 장치하고 마치 사진기자처럼 대기하고 있었다. 120m 정도의 높이로 분출하는 이 Geyser의 모습은 그야말로 자연이 만들어놓은 장관이었다. 아니 지구가 숨을 쉬며 물을 뿜어내는 한 컷의 용트림치는 몸부림이었다. 이 공원은 5∼10월 사이에 개장한다고 한다. 내년에는 옐로스톤공원의 절반이 휴식년에 들어간다고 한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는 Hot Spring이 만여 개, Geyser가 70여 개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곳은 그 옛날 수우 부족이 살던 곳으로 시베리아 동부에 살던 아시아인들이 먼 옛날 베링해협을 건너 캐나다를 거쳐 이곳에 도착하였다. 바로 이 사람들이 오늘날 아메리카 인디언이다. 이들이 남으로, 남으로 이동하여 유명한 잉카문명, 아즈텍 문명을 꽃 피웠던 것이다. 'Yankee Go Home'을 처음 외친 이들은 백인들이 끝내 노예로 만들지 못한 족속이었다. 지금 미국의 인디언들은 542부족에 150만 정도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Old Faithful Geyser Inn에도 들어가 보았다. 목재로 지어진 자태가 고풍스러운 여관이었다. 그리고 또 여러 Geyser들이 분출하는 모습을 보았다. Midway Geyser는 스쳐 지나가고, Lower Geyser에서 Mud Volcano, Hot spring, Geyser 등을 흥미롭게 보았다. 그리고 카메라의 셔터도 신나게 눌러댔다.

저녁식사는 로키산맥을 누비던 저 Buffalo 갈비, 그것을 4대씩이나 먹었다. 잠시 후, 다시 1시간 반정도 버스를 타고 달려서 Reckberg에 있는 Cotton Tree Inn으로 가서 피곤한 여장을 풀었다.

 

8.19(월)

Norris Geyser가 있는 이곳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Yellow Stone의 산상호수이다. 둘레가 1,440마일, 높이 2,500m인 이곳은 큰 송어와 메기가 풍부한 낚시의 천국이다. 120만년 전에 화산이 분출한 이곳은 펠리칸, 버팔로 떼들이 자연을 노래하며 사는 곳이다. 빙하가 녹아서 고여 있는 이 호수의 최고 수심은 150m로서 먼 산의 흰눈이 마치 겨울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West Thumber Geyser는 산상의 호수와 조화를 이루어 자연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다시 버스의 좌석에 기대어 Grand Teton 국립공원을 스쳐 지나간다. 미국의 알프스로 불리는 그랜드 티톤산. 이곳의 Jackson 호수는 댐을 막아 더욱 수량이 많아졌다고 한다. Mt. Moran은 1957년 존웨인 주연의 쉐인의 촬영지로서 부시와 고르바쵸프가 회담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Mt. Grand Teton의 뾰족한 3개의 봉우리는 프랑스 처녀의 아름다운 유방을 빼어 닮았다고 하여 더욱 남성들로부터 시선을 집중 당하고 있는 산이었다.

버스를 타고 다음에 간 곳은 Jackson Hall이라고 하는 로키 속의 작은 도시이다. 인구는 4,500명 정도의 우리나라의 면소재지 정도의 도시로서 스키장이 있고, 엘크 보호구역으로서 음악제가 유명하다고 한다. 수 백 개의 사슴뿔로 만든 여관의 입구는 시선을 멈추게 만들었다. 이곳은 서부 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도시로서 아담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에서 몇 년 묵으면서 나도 배우가 되어 존 웨인과 함께 서부영화 한편을 찍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점심식사는 어제 버팔로를 먹었던 음식점에서 스테이크를 먹었다. 4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그저께 묵었던 Idaho State, Potatello City의 Cow Ox Hotel에 여장을 다시 풀었다. 저녁식사는 죽림원에서 부페식으로 하였다. 내일은 다시 Salt Lake City를 거쳐 Utah의 남쪽까지 유랑할 것이다.

 

8.20(화)

08:30 정이 든 Pocatello를 출발한다. Idaho에서 보는 산능선들은 미치 늙은 황소의 잔등이 털처럼 푸근하게 보인다. 맥도날드 더글라스사의 본사가 있는 곳이 여기포카텔로이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The Great Salt Lake, 대염호. 맨 먼저 도착한 호수 입구에 있는 궁전은 3번이나 화재가 나서 다시 건축한 것이라고 한다. 중동지방에 있는 死海 다음으로 염분이 높다는 호수, 그래서 새우 몇 종류 밖에 살수 없는 곳이 그 곳이다. Salt Lake City는 유타주의 수도로서 유니언 퍼시픽 철도회사가 경영하는 대륙횡단 철도의 동과 서가 만나는 곳이다. 또한, 수많은 컨벤션센터가 있으며, 호텔의 경우 6개월 전에는 예약을 해야 겨우 하루 저녁 숙박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주에 비하여 상당히 소득이 높고, 여행 시 각종 안내서도 다른 주에 비하여 풍부한 곳이 그곳이다. 점심식사는 솔트레이크시에서 한국인이 경영하는 고려정이라는 곳에서 하였다. 이제,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Grand Canyon을 향하여 달린다.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은 로키산맥 줄기이다. 넓디넓은 평원이 있고, 거기에는 수를 셀 수 없는 소, 양들이 유유자적하게 풀을 뜯고 있었고, 트랙터가 먼지를 일으키며 드넓은 밭을 일궈내고 있었다. 스프링쿨러가 돌아가며 물을 뿌리는 그곳 바로 옆의 약간만 경사진 곳엔 풀들이 누렇게 말라죽어 있었다. 그 사이에 하얀 껍질로 단장한 작은 나무들이 조막손들을 나풀거리고 있었다. 철도가 기차도 없이 누워 있고, 전봇대가 먼 하늘을 보며 뚝뚝 떨어져 서있다. 그 위 하늘에는 노래를 부르는 듯한 뭉게 구름이 두리둥실 산을 넘고 있었다. 로키산맥 위로 쭉 뻗은 고속도로에는 여기 저기 단 몇 대의 자동차들이 경주하듯 미끄러진다. 길옆에는 회색빛깔의 나무처럼 빳빳한 풀, 그 밖으로 2∼3m 크기의 난쟁이 같은 나무들이 있고, 저 멀리에는 높은 준령들이 도시의 건물들의 모서리를 깎아 만든 것처럼 아름다운 Sky Line을 이룬다. 바람 때문에 건조한 지역이다 보니, 코가 막히도록 먼지가 뿌옇게 인다. 마침 건너편 산에서 일어난 불은 뿌연 연기가 피어올라 멀리 보이는 흰 뭉게구름과 대조를 이룬다.

우리는 그 산불로 인하여 다른 도로로 우회하여 달리다가 Big Rock Candy mountain Resort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다시 출발하는 시간은 18:40이었다. 계속 버스를 타고 주변을 보며, 꿈을 꾸다가 다시 눈을 뜬다. Kanab에 도착한 것은 해가 이미 넘어간 21:00 쯤이었다. 로키산맥의 조그만 마을에 얹혀 있는 단층 짜리 아담한 호텔이었다. 선물가게에 들렀다가 한국인이 있길래 말을 걸었다. 그 사람은 내 나라, 내 고향 의정부에서 온 가이드였다. 포천군 운천 사람들 18명을 안내해서 온 세운여행사 가이드였다.

 

8.21(수)

08:00 오늘도 벅찬 가슴을 안고 또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Kanab은 카우보이의 본고장이다. 아침에 시골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한적한 도로에 교통 경찰이 "STOP"이라고 쓴 간판을 직접 손에 들고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 특이하였다. 주변의 산들은 노두가 지표면에 회색빛으로 드러나 여기가 Grand Canyon에 가까운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드디어 08:15에 Arizona주에 통과 신고를 하였다. 버스는 더욱 속도를 내어 그랜드 캐년으로 향한다. Arizona Port of Entery라는 간판이 보이고, 일단 넓은 고원이 전개되고 있다. 불그스름한 토양, 듬성듬성 심겨진 키 작은 나무들, 흔들리기조차 싫다는 풀들. 지평선과 나란하게 줄어 서며 떠있는 구름들. 그리고 일직선으로 뻗은 길게 도로가 두 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굽이굽이 휘어진 길옆에는 다시 큰 소나무 숲이 나타났다.

애리조나라는 옹달샘에서 유래했다는 Arizona 주는 1912년에 48번째로 연방에 가입하였다. 아파치 인디언의 끝까지 저항하였던 이곳은 지금도 나바흐 인디언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하늘을 찌르는 자작나무, 소나무 숲의 웅장한 풍치가 눈을 시리게 하고, 아름드리의 푸른 나무들, 까마귀떼, KAIBAB고원, 파아란 하늘, 하얀 자작나무 띠가 신선이 사는 아름다운 곳처럼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Corolado강이 흐르는 Grand Canyon은 길이가 총 277mile이다. 17억년 전에 융기를 시작한 고생대 지층으로 총 13개의 퇴적암층으로 이루어진 조산운동지역이다. 기온은 100℉에서부터 5개의 기후대가 존재하며 식생이 다양하고, 또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이 극심하다고 한다. 이곳은 또한 North Rim이 South Rim보다 더 높다고 한다. 이곳은 스페인 탐험대가 인디언의 안내를 받으며 처음 도착하여 'Oh Grand'를 외쳐서 그랜드 캐년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드디어 Grand Canyon이다. 이곳이 5억 년의 역사가 쌓인 곳인가! 대협곡!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으랴! 이곳이 바로 5억 년 전의 바다 속이었다니! 시간이 쌓이고, 바다가 솟아오르고, 지구의 역사가 또 그곳에 쌓이고… 가까이 멀리 눈에 들어오는 저 지층 무리들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흥분된 이 상태에서, 이곳에서 1시간만 머무르고 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눈앞에 전개되는 불그스레한, 거무스레한, 그리고 흰빛에 가까운 회색빛 저 지층들은 신만이 만들 수 있는 우주의 환상곡이니라!!! 자연이 인간에게 내려준 예술의 극치 바로 이곳이 Grand Canyon이었다.

리무진은 핸들을 돌려 또다시 유타주로 빠져 들어간다. 버진강이 쓸고 간 Zion Canyon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것이다. 자이언캐년 입구에서 반대차선 자동차들의 통행을 위해 잠시 대기한다. 그 사이에 차에서 내려 땅을 밟으며 잠시 더운 바람을 쐰다. 안내 아가씨들과 멋지게 기념사진도 찍었다. 다시 차에 올라 자이언 캐년 속으로 들어간다. 교과서에서만 가르치던 여러 가지 퇴적구조와 지질구조가 보인다. 사층리, 단층, 부정합, 버섯바위, Cave, 테일러스가 거대한 사진처럼 눈에 들어온다. 불그스레한 지층으로 구성된 웅장한 산봉우리들, 50℃ 정도의 기온은 온몸을 쇠 덩어리로 만들고 있었다. Evian 생수 한 병을 사서 벌컥벌컥 들이키고, 또 차에 오른다. 거의 흑회색에 가까운 아사직전인 듯한 풀들만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화원에서만 보던 선인장들이 전봇대처럼 여기저기 서있었다. 여기가 바로 세계 3대 사막의 하나인 모하비 사막이다. 이곳에서는 물은 한 병에 1$03¢, 휘발유는 1갤론에 1$20¢이다.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었다. Beaver River 주변에는 뜨문뜨문 마을이 눈앞에 들어온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는 지금Arizona주에서 Neveda주로 넘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Casino 간판이 나오기 시작한다. Oasis가 있는 주유소에 내려서 휘발유를 넣고, 잠시 사막의 후끈한 바람냄새를 맡아본다. 뜨거운 햇살이 지붕 속으로 들어가니, 금방 시원하게 느껴진다. 강수량이 1년에 110mm 정도인 이곳이 바로 지리시간에만 배웠던 사막지형이다. 신기루에 아스팔트 위로 펼쳐진다. 소금이 섞인 모래가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눈을 시리게 하고 있다.

버스는 드디어 '푸른 초원'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Las Vagas가 눈앞에 잠든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사막지형인 이곳은 1936년부터 로키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만년설이 녹은 물을 가두어 만든 후버댐으로부터 물을 끌어쓰고 있었다. 사막 속의 인공도시 라스베가스, Made In Korea인 720만개의 전등이 찬란하게 빛을 쏟는 환상의 야간도시, 결혼과 이혼이 세계에서 가장 쉽다는 정조라는 말이 거추장스러운 자유분방한 도시, 108층 높이의 스트란토스피어 호텔이 우뚝 서서 사막을 지키고 있는 도시. 마피아의 두목 알카포네가 술을 만들어 팔아 떼돈을 벌었다는 마피아의 도시, 환락의 도시, 도박의 도시, 객실을 5,700개나 가지고 있는 세계 제1위의 호텔 MGM이 네온사인을 뿜고 있는 밤의 도시, 세계 1∼7위의 호텔이 모여 있는 도시, 캐딜락, 링컨과 같은 리무진이 줄을 선 도시, 권투 세계 챔피언이 수없이 탄생하고 사라진 흥행의 도시, 이곳이 바로 라스베가스이다.

이곳에는 한국인이 1,000여명 정도 거주하는데 주로 카지노 딜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월 급료로 3000$ 정도를 받고 있으며, 기타 음식점 경영 등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비원회관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Treasure Show를 구경한 뒤 배우들과 기념촬영을 하였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Jubilee Show에서 화려한 조명을 향해 춤추고 노래하는 무희들과 가수들을 눈동자 속에 넣고, 또 Fremont Show를 보았다. 나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총천연색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여기가 Las Vagas란 말인가!

호텔마다 외형과 간판, 네온사인을 특이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세계의 유명한 건축물들이 복제되어 여기에 모여 있었다. 스핑크스, 피라미드, 동화의 나라, New York의 모습, 금문교의 아름다운 자태. 온몸이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라스베가스의 육교엔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고, 이들 주위엔 화려한 네온사인이 레이저불빛과 합창을 하며 눈부시게 나를 머물게 하고 있었다. 도로 중앙 분리대의 야자나무까지도 하나하나까지도 조명등을 밝혀 행인을 머물게 한다. 호텔마다 휘황찬란한 간판을 벽면에 가득 채워 카지노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도시 Las Vagas, 이곳은 다른 어느 도시보다 호텔비가 싸고 음식값이 또한 싸다고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카지노에서 돈을 쓰게 된다나. 세계의 돈 다발이 밀물처럼 흘러 들어오는 그야말로 그곳은 돈의 바다였다. 라스베가스, 그곳은 세계 속의 다른 세상이었다.

 

8.22(목)

05:30 온갖 환상 가득 담긴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호텔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라스베가스의 아침을 본다. 가로수 야자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사막의 레이저빛 같은 태양이 원색으로 부풀어오른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호텔에서 짐을 챙겨 06:30에 라스베가스 공항으로 향한다. 어제의 밤의 화려한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숨어 버리고 피난민들이 탈출한 도시의 모습으로 라스베가스는 내 눈앞에 다가왔다. 허전하게, 허전하게 그리고 적막이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잠깐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 곳에도 또 Casino가 보인다. 마치 바다 뻘 속의 거머리처럼 호텔에서 덜 털린 돈마저 빨아내려는 것 같이 카지노 간판은 서 있었다. 사막의 한가운데 만들어진 환락의 도시 라스베가스를 두고 비행기가 사뿐히 이륙한다. 하늘에서 본 네바다주의 벌판은 모두가 사막이었다. 산 중턱을 깎아 만든 도로가 길게, 길게 뻗어있었다. 회색의 모래 사막이 보인다. 그리고, 잠에 잠깐 빠졌다가 눈을 뜨니까 태평양에 기대고 있는 도시, Los Angeles가 나온다.

우리 일행은 LA에 도착하여 한인이 경영하는 Haward Grand Hotel에 투숙하여 피곤한 몸을 잠시 쉬었다. 오후에는 승용차를 렌트하여 세계 영화산업의 본거지인 Universal Studio를 관람하였다. Stunt Show, …등 몇 가지 프로그램을 보고 밤이 되어 다시 나와 호텔로 향하였다. 가까운 사람 몇 명이서 심야에 고국에서 많이 듣던 Santa Monica 해변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시내의 이정표는 방향을 혼돈 시켰다. 밤에 처음 나온 LA 시내는 주위를 잘 구별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여기저기를 헤매고 또 헤맸다. 자정쯤에 어떤 미국인이 산타모니카 쪽으로 가면서 방향을 알려준 덕분에 새벽 1시경에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심야에 모르는 이국에 낯선 사람들과 몸집이 건장한 검둥이들이 여기저기 오고가고 한다. 심야 해변의 한기에다, 주위의 배경이 우리에게 으스스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차를 몰아 해변에 도착하여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을 좀 깨고 몇 시간 동안 참은 소변을 보려고 해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경찰차가 획 오더니 차를 세우고 내린다. 그리고 'What do you do?' 묻는다. 나는 'I look at the night beach.' 그때서야 경찰은 늦었으니 어서들 돌아가시오. 아휴! 나는 경범죄에 걸린 줄 알았다.

우리 일행은 새벽 2시경에 출발하여 3시쯤 호텔에 도착하였다.

 

8.23(금)

아침 9시에 렌트한 차를 타고 호텔을 출발하여 한낮의 Santa Monica 해변을 다시 구경하였다. 어제 밤에 본 해변과는 전혀 다른 고운 모래 벌판, 굵직한 야자나무, 출렁이는 바닷물, 이국의 그림 같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해변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예쁜 금발의 미녀와 야자수 아래서 사진도 찍으면서 어제 밤의 정적을 깨고 잠시 태평양의 물결을 일으키는 바람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다시 자동차를 몰아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한다. 서쪽으로 태평양을 끼고 San Diego를 거쳐 국경을 넘어 멕시코의 Tijuana City에 도착하였다. 거리의 모습이 마치 우리나라 70년대 중반으로 되돌아간 모습처럼 들어왔다. 우리는 일단 관광센터에 가서 Tijuana 방문 도장을 받았다.

거리에는 차양이 늘씬한 멕시코모자, 잉카 문명에서 유래된 듯한 죽죽 줄을 그은 천에 새긴 잉카인들의 아름다운 무늬들이 신비롭게 다가왔다. 그 사람들은 벌써 우리를 한국인임을 알아차리고, '어서 오세요, 이거 싸요, 깎아 줄께요.'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어떤 이는 멕시코의 특산물인 은목걸이를 사달라고 애원이다. 나는 은목걸이도 사고, 멕시코 모자도 샀다. 그리고 맥주집에 가서 해물요리를 시켜 놓고 술도 한잔하였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은 보석을 많이 샀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인지 술집 마담한테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들은 전부 가짜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가게에 다시 가서 환불을 해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물건들이 진짜라며 가짜 감정사를 대며 확인을 해주기도 하였고, 위협도 하였다. 결국은 우리가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그때서야 그들은 안되겠다 싶었는지 환불해 주는 것이었다.

18:00쯤 차를 돌려서 다시 미국으로 향한다. 멕시코로 들어올 때 무사히 통과했던 길이 되돌아 갈 때는 차량들이 길게 수십 m의 길이로 줄을 서 있었다. 국경 검문소에서 입국심사를 세심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미국인이거나 미국 비자를 소지한 사람들만 입국시키는 것이었다. 불법입국을 막기 위해서이다. 1년에 수 만 명씩의 멕시코인들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넘어 들어가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남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San Diego였다. 아름다운 컨벤션센터가 있는 이곳은 국제회의가 자주 열리는 도시였다. 거리가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고, 차분한 인상을 주는 고즈넉한 도시였다. 샌디에고 사람들은 그곳을 Port Village라고 선전하고 있었다. 우리는 항구 근처에서 사진도 찍고 식사도 하였다. 나는 미국인에게 내 사진 좀 찍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고맙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춥고, 집도 없는 사람이라며 나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래서 1$을 주었다. 알고 보니, 그는 샌디에고의 거지였다. 사진 찍는 비용치고는 비싼 것일까?

자동차로 달려 새벽 00:00시쯤 LA에 도착하여 리틀토쿄를 구경하고 호텔이 돌아왔다. 내일은 드디어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그리고 제자들이 있는 대한민국으로 되돌아가는 날이다.

 

1996. 8. 24(토)

우리 일행은 새벽 07:00쯤 호텔을 출발하여 로스엔젤레스 공항으로 향한다. 이제 미국 땅의 공기를 이번 연수에서 마지막으로 마시고 있었다.

다시 우리는 눈에 익은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이륙하니 금방 푸른 물결이 출렁이는 태평양이 나온다. 태평양 상공에서 기상대국에 몰입하였다. 그리고 한 달간 아메리카 대륙을 누비며 쌓였던 피로를 풀 듯 우리는 꿈속을 헤매면서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15시간 정도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스튜어디스의 안내방송과 함께 토쿄의 나리따 공항에 착륙하였다. 일본에 내리고, 타는 사람들을 위해서 1시간 정도 머물렀다. 우리는 공항에서 일본 사람들을 보고, 일본 물건도 유심히 보았다. 나에게 들어온 일본 사람들의 첫 인상은 꽤나 작게 보였다. 그리고 볼품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 여권이 있고 시간이 좀 있었다면 동경 시내 구경을 한번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다시 비행기를 오르고 잠시 후 김포공항이 안개 속에서 우리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서울, 인천, 부천의 고층아파트들이 고향처럼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서울시간으로 시계는 8월 25일 17:30쯤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공항에서 일행들과 작별인사를 하였다. 악수를 하고 눈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면서.

한 달만에 다시 고국의 공기를 마신다. 김포공항에서 택시를 타려고 밖엘 나오니 떠날 때처럼 이슬비가 끈적끈적하게 내리고 있었다. 나는 한 달만에 고국의 포근한 공기 속으로 온몸을 푹 담그고 있었다. 행주대교를 건너 일산으로 돌아오는 길은 미국으로 떠날 때처럼 빗속에서 강 안개가 구름과 어울리며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나의 귀국을 환영해주는 분위기를 잡아주는 늦여름의 비였다. 집에 도착하니, 그리운 가족들이 뛰어나오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아내와 진하게 포옹을 하였다. 그리고 두 아들과 손을 잡고 반가움을 나눴다. 역시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 푸근하였다.

더 머무르고싶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잊지 못할 많은 이야기들을 가슴에 가득 품고 돌아왔다. 35일 동안의 미국 연수, 이것은 나의 교직생활과 인생행로에서 한 획을 긋는 뜻 있고, 아름다운 추억의 앨범 한 권으로 영원히 각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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