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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時調

나순옥 시인 대표작

by 광적 2008. 3. 8.
촛  불 / 나순옥

하얀 알몸 불태워
당신 앞을 밝히고

뜨겁게 녹아드는
황홀한 눈물 속

보인다
아, 환히 보인다
부활로 가는 저 길이  


저 바지를 / 나순옥
                
즐겨 입던 청바지가
빨랫줄 위에서 춤춘다
뻣뻣하지만 그런대로
길들여졌다고 믿었는데
낡도록
꼭 한 사람인
나에게만 입혀졌는데

내 몸이 빠져나오자
저렇듯 좋아할 수가
비바람도 햇볕도
다소곳이 막아주며
몸뚱이
움직이는대로
순순히 따른다 했는데

저 몰골로 바람과 노는 게
저리 좋을 수 있을까
하기야 몸에 꽉 붙어
좀 답답했을까만
저 바지
다시 입어줄까
바람에 날려보낼까


봄비 2  / 나순옥

그렇습니다
어머니
당신의 눈물입니다
불만과 반항 켜켜이 쌓여
가늠 못할 얼음의 두께
따스이
녹아내리게 한
당신의 눈물입니다

구심점 밖 서성이며
끝없이 메말라 갈 때
서늘히 갈라진 가슴
촉촉하게 적시어
파릇이
새움 돋게 한
당신의 눈물입니다


고향  / 나순옥

잉걸불로 타오르던
그리움도 사위고

미워할 그 무엇도
남지 않은 세월 밖에서

끝끝내
지우지 못한
종두자국 같은 것아



단풍  / 나순옥

순간이면
어떠리
이리 서로 타는 것을
앞만 보고 달려 와
여기가 끝이라 해도
마지막
한 방울 수액
나눠 마실

있음에


충고 / 나순옥


생각의 한가운데
은빛 삽날이 꽂혔다
낭자히 피를 흘리며
깨어나는 나의 의식
원효의
발길을 돌린
해골에 고였던





봄비 / 나순옥

1
은침 하나 하나
맥을 짚어 꽂는다
찬란한 태몽 앞에
밀려 나가는 냉증
대지는 몸을 뒤틀며
입덧이 한창이다

2
호기심이 발동한
개구쟁이 눈빛이다
손톱 밑 까매지도록
땅거죽 헤집어
새싹들 간지럼 태며
키득키득 웃고 있다.



J에게 / 나순옥

바닷물이 넘실거릴 때는
그 본질을 잘 모른다
햇볕에 한번 말려 보아라
희고 단단한 성깔
썩는 곳
단호히 맞서
제 몸 녹여 스며드는...



못2  / 나순옥
    - 이혼녀



혹독하게 내려치는
망치의 그 매질도
탄력 있게 받아내며
당당히 박혔었지
벽면을 쩡쩡 울리며
자리잡고 으스댔지

걸 것
못 걸것
모두 걸어 힘들었고
게다가 무심한 벽은
더 힘들게 만들었어
나날이 야위어가며
탈출을 꿈꾸었지

자리 옮김 다짐하고
벽에서 뽑혔을 때
반쯤은 휘어지고
벽면도 뚫어졌어
한자리 박힌 그대로
그냥 살걸 그랬어


일기예보  / 나순옥
꽃샘추위 그 기승에
개화,
늦출 수야 있겠지
낮게 낮게 엎드린
가슴마다 불덩인데

온 강토
빙하로 덮은들
화산폭발 막겠는가.



슬픔처럼 하롱하롱  / 나순옥
                  - 달



해는 날마다 같은 자리
같은 모습으로 뜨고 지지만
나는 당신의 달
하루도 같은 모습 일 수 없어
때로는 깜깜한 합삭
표정조차 보일 수 없어

흥건히 스민 눈물
달무리 이루는 밤
슬픔처럼 하롱하롱
꽃잎은 져 쌓이고
밝히면 밝음으로 인해
그림자 더욱 짙어



은행나무  / 나순옥

건네 줄 향기로움
서로 갖지 못한 채
그리움 만한 거리에
가슴 떨림으로
마주



그윽한
눈빛뿐인데
열매가 맺었구나


담배 / 나순옥



두 치 반 짧은 생애
당신 위해 태웁니다
그대 손 샅 따뜻한 온기
진한 피 돌게 하여
깊은 밤
뒤척이는 시름
모두 안고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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