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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時調

바다, 송정포

by 광적 2008. 3. 30.
   바다, 송정포 / 지성찬

송정포 가는 길에 하늘 빛이 하도 고와
흰구름 한두 점이 그대로 꽃이더라
바람아 멈추어 서라, 하마 꽃이 지려한다.

세월만큼 밀어올린 벼랑을 만났었다
가진 것 다 내주고 맨살만 내보이는
이 가을 물든 낙엽에 몸 가리고 있더라.

그 바다 송정포는 가슴 뜨거운 젊은이들
태양과 한바탕 어우러진 율(律)의 향연
충만은 넘쳐흘러서 섬이 되고 새가 되고

물새가 춤을 추면 돌섬도 우쭐대는
한마당 굿판이더라, 물결이여 돌섬이여
해마저 빙그르 도는 그 바다는 춤이더라

송정포 바다에는 한줄 시(詩)가 있더란다
은(銀)빛 언어들이 그물 속에 걸려오는
싱싱한 물고기 같은, 시원(始原)의 비늘 같은

그 고운 바다에서 멸치새끼 건지더라
하의(下衣)를 벗기고 대낮에 말리더라
비틀린 갈비 사이로 그 하늘도 말랐더라

바퀴 달린 물탱크가 감시하는 이 바다에
자유의 어족(魚族)들이 그물에 옭힌 오늘
서족(庶族)은 칼은 맞거나 귀족(貴族)은 물을 먹거나은

기나긴 세월에도 바다는 바다였느니
물새는 물새끼리 물고기는 물고기끼리
끝 없이 맴도는 회류(回流), 하늘은 이상 없음

나는 보았느니 증거로 남은 모래를
나는 들었느니 솔숲의 푸른 진실을
장엄한 묵시의 바다를 생명으로 받았나니

이렇게 맑은 날엔 솔나무를 꺾을까봐
솔나무 붓을 들어 바다를 흠뻑 찍어
힘차게 일자(一字) 한 획을 하늘에 긋고 싶다

문을 닫는 송정포여 등불을 끄지마오
어쩌면 오실지 몰라 멀리서 오실 그대
바람만 건 듯 불어도 약해지는 등불이여

송정포 밤바다는 물새를 안고 잔다
몸을 뒤척일 때 일어서는 소리 있어
저만큼 달도 비켜간다, 우람한 그 몸짓에

송정포 밤은 기울어 모두가 침몰할 듯
오늘을 들이키는 저 갈증의 입술, 입술
송정포 홀로 두고는 돌아설 수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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