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실까지 / 최명란
내 생전 이보다 더 따뜻한 연애가 있었을까
뒤틀리는 아랫도리 분만실에 겨우 세우고 파르르 떠는 내 어깨를
그 의사의 하얀 팔이 감쌌다
집에 아무도 없어요
나는 열 달 내내
출산을 위해 챙겨 두었던 가방을 들고 혼자 분만실까지 왔다
눈만 흘겨도 애를 배는가
그 그믐밤 꼭 한 번 밤꽃 아래 잠시 입 벌리고 누웠을 뿐인데
어둠 속에서 사내도 없이 달의 배는 점점 커져갔다
그날 밤 강 건너 깜빡이는 담뱃불을 따라가지만 않았어도……
살면서 내가 선택한 그 많은 일들
기어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소리 없이 운 세월 뒤로
소등된 골목에 새벽별만이 찬 빛을 뿜어내고 있다
그간 밖에서 있었던 일 백의의 의사에게 모두 일러바치고
서러웠어요 여름날 매미처럼 소리 내어 울고 싶었어요
서장대를 넘어가던 촉석루 새벽달이 남강의 깊은 물속을 들여다본다
까맣게 타버린 내 야윈 가슴과
논개의 열 가락지 사이사이로 살찐 물고기들이 어렵사리 오고 간다
남강의 새벽공기는 차고 물결은 푸르러 차라리 검다
기울던 새벽달이 다시 촉석루 정수리에 초승달로 떠올라도
누가 어찌
표나지 않는 내 아랫도리의 죄를 물을 것인가
-「분만실까지」전문, <다층> 겨울호/ 최명란
아빠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간통에 의해 태어난, 병원에서 임산부 혼자 병원에 가서 사생아를 낳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옛날 개념으로 따지자면 서자 출산에 해당되는가? 법적으로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도의적으로는 지탄을 받아야 하는 출산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돌출적으로 느닷없이 찾아오는 사랑으로 잉태된 생명들이 무수히 많다. 유산을 시키지 않고 끝까지 배태의 아픔을 이겨내고 출산까지 하는 산모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서러웠을 것이며, 까맣게 속이 탔을 것이며, 이제 앞으로 더욱 힘든 여정을 평생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스산한 길을 걸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스산하지 않은 척 하며 걷고 싶어도 뜻대로 안 되는 나날들이 평생 이어질지 모른다. 이 얼마나 크나큰 짐이며 가혹한 업보인가? 미련없이 살고자 하나 평생 죄인의 심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