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과 수제비 / 김춘기
외가에 가는 길
긴 하루가 산그늘에 쓸려가는 저녁
저고리에서 풋마늘 냄새나는
배 고랑 등에 달라붙은 할머니
목련나무 가지마다
하얀 장갑 끼고 있는 뒤란 우물가에서
화덕에 불 지피신다
'오늘이 너희 애비 생일이란다.'
부지깽이로 검게
아버지 얼굴 그려보는 내 곁에서
가랑잎 한 줌에 고단함도 함께 담아
참나무 장작을 밀어 넣는 할머니
찌그러진 양은솥 뚜껑 젖히고
물 설설 끓는 당신 마음속에
세상에서 가장 순한 손으로 뚝뚝 떼어 넣는
밀수제비 한 점, 한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