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밭/詩

백목련과 수제비

by 광적 2008. 5. 20.

 백목련과 수제비 / 김춘기

 


외가에 가는 길

긴 하루가 산그늘에 쓸려가는 저녁

저고리에서 풋마늘 냄새나는

배 고랑 등에 달라붙은 할머니

목련나무 가지마다

하얀 장갑 끼고 있는  뒤란 우물가에서

화덕에 불 지피신다

 

'오늘이 너희 애비 생일이란다.'

부지깽이로 검게

아버지 얼굴 그려보는 내 곁에서

가랑잎 한 줌에 고단함도 함께 담아

참나무 장작을 밀어 넣는 할머니

 

찌그러진 양은솥 뚜껑 젖히고

물 설설 끓는 당신 마음속에

세상에서 가장 순한 손으로 뚝뚝 떼어 넣는

밀수제비 한 점, 한 점.

'나의 글밭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행나무  (0) 2008.06.18
저녁 식탁  (0) 2008.06.04
사월은 선거유세 중  (0) 2008.05.20
일산에 내리는 눈  (0) 2008.05.20
목련꽃 편지  (0) 2008.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