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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문학장르/좋아하는 詩

삶은 감자/안도현

by 광적 2008. 6. 18.

삶은 감자 / 안도현

 

삶은 감자가 양푼에

하나 가득 담겨 있다

머리 깨끗이 깎고 입대하는 신병들 같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중이다

감자는 속속들이 익으려고 결심했다

으깨질 때 파열음을 내지 않으려고

찜통 속에서

눈을 질끈 감고 익었다

젓가락이 찌르면 입부터 똥구멍까지

내주고, 김치가 머리에 얹히면

빨간 모자처럼 덮어쓸 줄 알게 되었다

누구라도 입에 넣고 씹어만 봐라

삶은 감자는 소리 지르지 않겠다고

각오한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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