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조지섬 황제펭귄
김춘기
영하 70도 빙벽 아래, 설원은 펭귄의 모국
극야의 고추바람이 만년설의 뺨을 한 겹씩 벗겨내는 섬. 알을 낳은 어미 펭귄, 허기진 배를 붙들고 머나먼 바다로 떠난다. 오색 오로라 커튼 열며 맨발 내디딜 때마다 눈보라가 발자국 지우며 따라온다. 암컷에게 알을 받은 수컷, 발등에 생명을 곱게 얹어 아랫배의 온기를 겹겹 덮는다. 눈밭 위 퉁퉁 부은 두 발, 발가락 핏줄이 선명하다. 두어 달 크릴새우 한 점 입에 넣지 못한 아비 펭귄. 반쪽이 된 몸에 허공을 두르고, 자리 지킨다. 바다표범의 푸른 눈빛이 설야 틈새로 들어오고, 도둑갈매기 저공비행이 낮게 깔린다.
바람을 밀어내던 아비, 순간 언 몸에 싸라기눈이 다닥다닥 들러붙는다. 또다시 블리자드 사나운 설원에 이정표처럼 서 있는 펭귄, 눈빛까지 얼어있다. 바람도 잠든 바로 그날. 드디어 환청처럼 들린다. 알껍데기 깨는 소리. 어느새 바람을 헤치며 돌아온 어미, 아기 펭귄을 가슴에 넣고 모정을 불어넣는다. 부리를 서로 부비는 펭귄 부부, 푸른 하늘 저편 소나기 눈발이 하늘 다시 덮는다. 이제는 아비가 만년설의 산맥을 넘고 넘어 다시 바다로 가야 한다. 한 줌의 생명을 끌며, 끌며 섬과 섬의 차디찬 핏줄을 잇는 외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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